logo

slider01 slider02 slider03 slider04
정평창보자료

[정평환]지침서 1부 1장

조회 수 2785 추천 수 0 2003.09.12 15:42:34
29-11-2001 지침서 1부 1장

+ 평화와 선 +

작은 형제회 총 본부 정의, 평화, 환경 위원회가 펴낸 정평환 지침서를 작은 형제회 신부님 수사님들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전체 4부로 되어있는데, 먼저 1부 1장 "세상에 대한 프란치스칸 현존" 을 자료실에 처음으로 올립니다.

1장은 주로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관련하여 그의 생애가 세상에 가져다 준 현존의 새로운 양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국가 정평환 담당 왕은숙(율리아나) 올림

============================================================================

정평환 지침서 번역(초안)

1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프란치스칸 전망

1장 세상에 대한 프란치스칸 현존

새로운 인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추앙받는 수많은 성인들 중에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오늘날에도 매력을 끌고 인정받는 성인 중 한 분이다. 그의 영향은 그리스도교를 넘어서 널리 퍼진다. 그는 모두에게 속한다. 우리 모두에게 활짝 꽃피고 싶어하는 인간애를 곁눈질하면서 일찍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나타난다. 성 프란치스코의 첫 번째 전기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라고 적고 있다(1첼라노 82).

그래서 혼란으로 가득 찬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의지하여 인간애의 꽃을 피우게 하고, 이 세상에 새로운 질적 현존이라는 특징을 지닌 그 지혜의 비밀을 묻는다 해도 놀랄 것이 없다. 프란치스코가 세상에 전해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은 현존의 새로운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 현존이란 복음적이고 우주적(보편적)이며 또한 심오하게 인간적이다. 전적인 현존은 “창조의 일치 안에서 모든 적의를 형제적 긴장으로 전환하는” 선물이다(Paul Ricoeur). Louis Lavelle은 “과거에 이 사람만큼 전적인 현존을 전해주고, 자신의 완전한 선물을 누구에게나 더욱 완전하게 전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하느님의 현존의 표현이고 하느님께서 매 순간마다 모든 존재들에게 부여하시는 은총이다.”(L. Lavelle, Quatre Saints, ed. Albin Michel, Paris, 1951, p.88).

그러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모든 인간적인 다툼이 평화의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떻게 이 세상을 향한 그 현존에 자신을 열었는가?

본질적인 메시지

그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의 산업화된 문명은 막다른 골목에 있다. 당연히 우리는 과학적 기술적 진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데카르트의 소망을 따라 우리를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무겁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의 환경과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은 날로 인간에 대해 날로 발전하는 조작과 자연에 대한 소위 휴먼 테크놀로지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자원에 대한 더없이 확고한 기술공학적 착취가 이익만이 곧 법인 시류와 더불어 실업과 사회정의 분야에서 많은 인간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인간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는 상황은 점점 늘어가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평화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산업 문명 속에서 살아온 인류는 소유에 관해서만 생각해 왔다. 이제 우리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평등한 형제로 맞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 만유의 형제인 성 프란치스코는 이 문제에 관해서 본질적인 무엇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의 메시지를 적절하게 알아듣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씨시의 가난뱅이 이미지를 반드시 버려야 한다. 우리는 그를 매력이 넘치는 창조의 왕자쯤으로 만들어왔다. 아마 매력은 있을지 모르나 완전히 허상뿐이다. 진짜 프란치스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영감적인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대담한 개혁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복음에 대한 충실성 안에서 프란치스코는 당대의 정치-종교 체제를 부쉈다. 교회가 거의 봉건군주인 체제, 성전(聖戰)과 십자군의 체제를 부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돈”이라는 자치도시 사회의 새로운 우상과 거래하기를 거부했다. 하등 피조물에 대한 그의 형제적 태도를 말하자면, 감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태도는 창조에 대한 분명하고 깊은 이해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출발점 : 그리스도와 만남

아씨시의 가난뱅이가 시작한 이 새로운 현존의 기원에는, 청년 베르나르도네의 회개가 시작되는 영적인 체험이 놓여져 있다. 만일 그의 영감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이 체험의 핵심에 동참해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만물의 형제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되었다. 심오한 회개의 대가이다. 사춘기와 청년기의 그는 우리가 존경하는 평화의 사람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의 첫 번째 전기작가들은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된 상냥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고 전해준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외면 아래 깊이 감춰진 곳에는 폭력과 야망에 정복과 지배의 욕망이 놓여있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프란치스코는 권력을 탐하고 획득하기를 갈망하는 신흥계급에 속해 있었다. 봉건적 멍에에서 자유로워진 중세 자치도시의 부유한 중간계급은 상인들을 중심으로하여 자신들의 사업을 운영하려고 하였고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이 신흥 사회 세력의 움직임을 따라서 청년 프란치스코 역시 거창한 야망을 키워나갔다. 그는 과시하기를 좋아했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했으며, 다른 이들 위로 올라서고, 아씨시의 엘리트 청년 중 왕이라고 자부하기를 좋아했다.

점점 자라면서 그의 야망도 함께 자라났다. 그는 그저 포목상이나 되어 아버지의 사업에 주저앉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만한 꿈을 가졌다. 그는 기사가 되기를 열망했고, 심지어 왕자가 되고 싶어했다. 한번은 프란치스코가 잠이 들어 아버지 가게 꿈을 꾸었는데, 그는 그 가게가 궁전으로 변하고 그 궁전의 여러 방에는 갖가지 무기의 광채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무기들의 광채가 그를 비추고 있었다. 그에게 그리고 그의 기사들에게. 철없던 시절 그는 세상을 자신이 세상을 정복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청년 프란치스코는 영광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에 영광이란 전쟁에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정확히 이 시대에 전쟁은 프란치스코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아씨시와 페루지아, 인접해 있는 두 라이벌 도시 사이의 전쟁이 일어난 직후였다. 프란치스코는 아씨시 자치도시의 민병대에 자원하였다.

프란치스코는 폰테 산 지오반니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전투는 페루지아의 승리가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는 적진의 감옥에서 1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아씨시로 돌아왔을 때, 그의 건강은 이미 쇠약해져 있었다. 병에 걸린 것이다.

오랜 기간 계속되어 프란치스코를 무위와 고독으로 몰아넣은 이 병은 프란치스코의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청년기가 공허였음을 체험하였다. 그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자 프란치스코는 아씨시의 다른 청년 귀족들과 함께 다시 전쟁을 치르고싶은 야망에 사로잡혀 이태리 남부에서 황제군에 맞서 싸우고 있던 교황군대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스폴레토에 도착하자마자 프란치스코는 아씨시로 돌아가라고 명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그의 유일한 관심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찾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는 기꺼이 아씨시 외곽의 인적없이 버려진 작은 성당으로 물러나왔다. 특별히 산 다미아노로 가곤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비잔틴 양식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기도하였다. 평화를 발산하며 십자가에 달린 이 그리스도는 프란치스코에게 생생하고 압도적인 하느님의 인간애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이 사랑의 깊이와 황홀감에 완전히 사로잡히도록 자신을 내어 맡겼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생애를 통해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보시는 자비로운 방식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도 역시 다르게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세계는 인간의 비참함을 향해 열리게 되었다.

유언에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에게 다가온 급진적인 변화를 회상하였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 올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관계의 새로운 질(質)

이 변화를 조금 더 살펴보자.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사람과 세상을 향해 새롭게 개방하면서 자신의 회개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는 폭발하였다. 전에는 멀리하고 싫어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세계로부터 소외시켰던 사람들을 이제는 감히 찾아나서게 되었다.

단지 좀더 폭넓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관계하는 질이 역시 바뀐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야망으로부터, 특권과 정복의 욕망으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는다. 다른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바라보시는 자비로운 길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자비로운 눈길은 그의 세계를 뒤집어버렸다. 프란치스코는 정복과 지배의 욕망에서부터 연민과 친교의 자세로 옮겨갔다. 그의 세계는 가장 박탈감이 큰 이들에게 활짝 열렸다. 과거에 프란치스코는 빈궁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계급의 젊고 부유한 구성원으로서 그 지위에서 한 것이었다. 이 빈궁한 이들은 자신의 번드르르한 세계의 일부가 아니었다.

이제 벽이 무너졌다. 프란치스코는 세계를 다르게 봤다. 그는 세계를 자신에게 비춰진 특별한 사랑 그 자체에 비추어 발견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중 하나가 되시고 모든 이들, 나아가 소외된 이들의 형제가 되시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비추셨다. 하늘은 그 자랑을 잃었다. 프란치스코를 압도해오는 이 전망은 그에게 세상을 향한 새로운 현존이라는 영감을 주었다. 더 이상 그는 다른 이들 위로 올라서 지배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과 함게, 형제가 되려고 하였다. 더 이상 그는 세계를 정복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를 따뜻이 맞아들이고 모든 존재들과 친교를 나누려고 하였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만유의 형제 특히 보잘것없고 가난한 이들의 형제가 되려고 하였다.

세상을 향한 이 새로운 현존은 프란치스코의 전 생애에 영감을 주면서 그를 정향을 하였다. 우선 이 새로운 현존을 통해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맞아들일 준비를 하였다. 어느날 천사들의 모후 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복음을 들었다. “금도 은도 소유해서는 안 되고, 지니지 말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 이때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환하게 밝혀졌다. 그는 자신의 성소와 사명을 발견하였다(1첼라노 22). 제자들처럼,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메시아의 평화를 널리 알리려 파견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금도 은도 돈도 없이’, ‘부나 권력의 표지도 없이’, 오직 평화선포의 사명만을 지니고 사람들을 향해 나가곤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평화 주시기를 빕니다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인사를 주님이 나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복자가 아닌 친구로서 평화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의 현존은 ‘모든 적의를 창조의 일치 안에서 형제적 긴장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위대한 겸손으로 모두를 벗으로 삼는 평화의 건설자였고, 존재들의 친교의 창조자였다.

평화의 전달자

프란치스코는 교회에 의해 자행된 성전과 봉건 지배에 등을 돌린 후, 만나는 사람마다 ‘평화와 선’이라고 인사하면서 여행을 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을 회개로 초대하여 그들이 형제와 자매로 살도록 권고하였다. 볼로냐의 중앙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행한 프란치스코의 설교는 모든 증오와 미움을 버리고 새로운 평화조약을 맺어야 할 의무에 관한 것이었다. 아레쪼에서 프란치스코는 불화의 악령을 쫓아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아씨시에서 주교와 시장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프란치스코는 쉬지 않고 그 둘을 중재하고 화해시켰다.

“피상적으로라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생애의 특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삶을, 가장 거룩하고 가장 강렬한 의미에서, 애초부터 사랑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해 보인다.”고 P. Lippert는 적고 있다. 사실, 이 사랑은 프란치스코의 친절함에서 나오는 인간적 사랑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를 사로잡고 프란치스코를 통해서 온 세상을 퍼져나간, 마치 따뜻한 봄볕처럼, 친교와 평화의 힘이 되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었다.

이 힘은 빠르게 번졌다. 프란치스코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수십명, 그리고 수백명의 젊은이들과 그리 젊지않은 이들이 모두 그에게 합류하였고, 그의 모범을 따르기 원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와 축제 그 자체인 가난의 이상으로 달려 나갔다. 그 길의 끝에는 형제체의 뜻을 이루는 기쁨이 있었다.

형제체의 창조자

형제체! 그것은 그들이 찾던 바였다. 그것은 프란치스코가 알려준 평화의 얼굴이었다. 위대한 형제적 운동이 그의 궤적 위에서 자라났다. 이 운동은 시대의 욕망과 깊은 열망에 부응했다. 유대와 형제체의 이상은 널리 퍼졌다.

이 이상은 자유의 이상과 함께 자치도시들의 반란에 어떤 영감을 주지 않았는가? 봉건 군주의 권력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도시를 자유로운 자치도시로 건설하면서, 자치 도시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 관계를 열망하였다. 봉건시대에 군신의 관계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봉신(封臣)이었다. 자치도시는 이름 그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형제적인 사회적 관계를 약속했다. 최소한 그것은 일반인들이 희망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희망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자유 자치도시에서는 군주의 법 대신 상인의 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돈의 법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초기 프란치스칸 운동은 가난한 이들의 마음 속에서 진정한 형제체의 희망을 다시 밝혔다. 자치도시들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을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은 복음의 빛을 받아 살았다.

작은 형제체들, 형제들의 작은 형제체들뿐만 아니라 자매들의 그것들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구 유럽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들은 평화와 화해를 위한 많은 중심거점처럼 보였다. 사실대로, 형제들은 두배의 형제애를 살았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아주 특별하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 중 그 누구도 지배의 권력 행사는 금지되었다(1회칙 5, 9). “우리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종들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 때문에 피조물인 모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고 프란치스코는 말한다(2신자 47). 서로 다른 사회적 출신성분을 가진 형제들은 그들의 차이점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이런 형제체는 강제성과 전혀 관계없다. 프란치스코에게 형제들 각각은 개인이고 개별 존재였으며 고유한 인격이었다. 형제체는 오로지 인격에 대한 존중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었다. 그것은 항상 “너”를 “우리”의 분위기 안으로 항상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계획이 당대에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당대의 전(全) 교회는 지배적인 교회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구의 우두머리인 주교와 수도승원의 우두머리인 아빠스는 세속적 권력을 지닌, 때로는 이 세속적 권력이 온 지방에까지 확장되기도 한 진짜 봉건군주였다. 이런 상황에서 셀 수 없는 프란치스칸 형제체들이 전 유럽에서 자라났고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숨통을 트게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현존이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비천한 이들이 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존엄성을 재발견하는 형제적 친교, 이 형제적 친교를 창조해내는 현존이었다.

인류애의 차원

그러나 프란치스코의 눈길은 그리스도교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다. 아주 멀리 보았다. 프란치스코는 우주적 형제체 속에서 전체 인류를 다시 일치시키길 원했다. 이제 당대의 세계는 두 거대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서구 그리스도교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이 그것이었다. 이 두 구역들 사이에는 전쟁, 성전(聖戰), 십자군이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이 파괴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두 구역 사이에 다리를 놓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시대는 이 사업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5차 십자군 원정은 그 절정에 달했다. 그것이 전부였던가? 프란치스코는 에집트의 술탄에게 가기로 결심하였다. 어리석은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프란치스코는 아주 정중하게 십자군 한 가운데서 무슬림의 우두머리인 알-말릭 알-카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존중과 존경을 보였다. 그 누가 더 무엇을 바랐겠는가? 이미 엄청난 일이 성사되었다. 엄청난 일, 그러나 동시에 아주 보잘것없는 일. 이 아씨시의 가난뱅이의 평화 사명은 그 한계에 다다랐다.

체험의 한계와 깊이

다른 한계를 알게 되었다. 당대의 그의 수도회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한계는 프란치스코에게 아주 깊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주었다. 우리는 이 시련을 통해서 프란치스코를 따라야 한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내어맡기는 프란치스코의 현존은 바로 시련의 정화를 통해서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하고 가장 독창적인 사람들 중 하나인 새로운 사람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피조물의 일치”를 찾기 위해서 모든 존재들 사이에 형제체를 욕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란치스코는 평화의 마음,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마음으로 이 형제체를 욕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사랑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프란치스코는 가난해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사랑에서조차도.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어떤 대가도 마다않는 성공의 욕구는 그것이 비록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데 사용된다 하더라도 자기만족과 자기사랑일 뿐이다. 이 욕구는 종종 새로운 소외를 낳는다. 그것은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삶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삶이 모든 자기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은 분출되어 나가고 퍼져나가고 창조할 수 있다.

누구든지 프란치스코의 글을 볼 때면, 프란치스코가 불안, 흥분, 분노는 한 사람 안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선을 행하는데 가장 큰 방해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이것들을 소유하려는 태도, 비밀, 무의식적 소유의 틀림없는 표지라고 본다(권고 4,2; 11,2.3; 13,2; 14,3; 27,2). 누구나 자신은 순수하고 온화하고 무관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모순이나 논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런 후, 그는 불안해하고 흥분하고 공격적이 된다. 가면이 떨어져 나간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서 자신의 선을, 자신의 영역을 방어한다. 이렇게 되면 그는 주님께서 그를 통해 하실 수 있었던 선을 자기를 위해 횡령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이다.

만일 프란치스코가 불안과 분노에 대해서 명확하게 표현했다면, 만일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라고 권했다면(권고 15,13; 27,4; 1회칙 11,4; 17,15; 2회칙 3,11; 태양의노래 10), 그 역시 불안과 분노에 유혹을 받았다는 확실한 지적이다. 그것도 가장 교활한 방법으로 곧, 그가 이뤄낸 평화의 과업과 형제체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에 “피조물의 일치” 안에서 진정한 형제적 친교를 창조해내는 그의 노력을 통해서.

성공은 그에게 미소짓는 것처럼 보인다. 형제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교황들도, 차례차례로 이제 갓 태어난 수도회에 특별한 자비를 보였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수도회의 거룩한 형제들에게 그가 이룩한 모든 선에 대해 주님께 감사해야할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심각한 불화가 형제체 안에 일어났다. 형제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좀더 엄격한 조직체가 필요했다. 어떤 특정한 방랑생활은 끝내야할 필요가 있었다. 양성을 위한 집들과 시간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두가 이 새로운 방향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프란치스코는 5000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12명이 했던 그 방식과 똑같이 복음적 삶을 살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영향력있는 형제 몇몇에게서 형제체를 좀더 체계가 잘 잡힌 수도승원적 질서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욕망이 동터오는 것도 보았다. 이제 그의 눈에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현존과 마찬가지로, 가장 낮은 이들과의 형제적 친교라는 깃발 아래서, 무엇보다도 단순성과 복음적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로인해 프란치스코는 깊은 고뇌에 사로잡혔다. 과연 그들은 그것을 적용하면서 형제체를 그 원초적 성소로부터 멀리 떼어놓지는 않을까? 그는 자신의 정신을 진실하게 나눠갖지 못한 형제들이 자신의 과업을 뒤로 미뤄놓고 차지하는 것을 보았다.

평화로운 사람

병으로 악화된 이 도덕적 위기는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을 철저히 발가벗기도록 이끌어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겪었다”(LP 21; 1첼라노 104). 그는 자신의 고통과 혼란을 감추기 위해 은둔소의 고도과 적막에로 물러나갔다. 고립과 고통 속에서 자기를 닫아버릴 위험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프란치스코를 기다리고 계셨다.프란치스코는 최고의 정화에 초대되었다. 그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과업이 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과업을 벗어버릴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 수도회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일로 여기는 것. “더 이상 불안해 하지 말라... 나는 주님이다.” 프란치스코는 부르심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걱정근심을 주님께 벗어던졌다. 하느님이 계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자 프란치스코의 마음은 환하게 빛났다.

그때부터 프란치스코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 자신의 평화 사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영혼을 가지고. 중요한 것은 모범적인 형제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선을 뿜어내는 형제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프란치스코는 진리 안에서 쓸 수 있었다. “진정 평화의 사람은 이 세상에 당하는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몸과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는 사람들입니다”(권고 15).

형제체에 책임을 가진 한 형제가, 동료 형제들이 자신을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님을 사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핑계로, 은둔소의 외딴 곳에로 물러나려고 프란치스코의 허락를 청하였지만,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권위를 가지고 응답할 수 있었다.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은혜로 여겨야 하고, 또 형제들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든 그대를 때리면서까지 방해하는 사람도 은혜로 여겨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할 것만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그대에게는 은둔생활보다 더 좋은 것이 줄로 여기십시오”(봉사자에게 보내신 편지).

피조물의 일치

지금부터는 그 어느 것도 프란치스코의 평화로운 눈길을 제한할 수 없었다. 그 어느 것도 프란치스코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프란치스코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진정한 평화”를 기원했다. 아무것도 그의 지평의 척도보다 더 좋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사람들을 평화 안에 일치시키기를 원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그 평화를 모든 피조물에게로 확장시켜 모든 사람들이 자연과 화해하기를 원했다. 세상에 대한 형제적 현존을 위한 이 욕구는 형님인 태양의 노래 혹은 피조물의 찬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찬가는 황혼기에 이른 프란치스코가 작곡한 것으로 진실한 영적 유언이다. 이 찬가는 찬미의 격동을 드러낸다. 이 작은 가난뱅이는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두고 그를 찬미한다. 이 찬미는 태양의 광채, 별들의 절묘한 맑음, 바람의 날개들, 물의 겸손, 불의 열정과 땅의 인내를 담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 형용사 “아름다운”은 세 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된다. 이 우주적 찬미는 성서적 찬가와 시편의 진정한 전통 가운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있다. 바로 형제적 친교에 대한 욕구이다. 프란치스코는 피조물들과 형제가 된다. 지배하려는 사고를 모두 거부하고 프란치스코는 그들은 형제로 자매로 맞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높은 운명을 그들에게 결합시킨다. 그는 바로 그들과 함께 자기 자신을 하느님 앞에 찬미로 들어올린다.

피조물과의 형제적 친교는 감수성에 젖은 것도 아니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자연자원을 좋은 목적에 집중시켜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프란치스코를 따라 누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물질적 요소들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유용한 한, 더 형제적이다. 프란치스코는 그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용성도 찬양한다. 프란치스코는 누나 물이 “쓰임많다”고 칭송한다. 비슷하게 삶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언니 바람 그리고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도 각 가지 과일을 낳아주면서 우리를 길러준다고 한다.

피조물과의 이 형제적 친교에는 창조주의 사랑과 유사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 여기서부터 존재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종교적 존경심이 나온다. 숲에 나무를 하러 가는 형제들에게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이 나무를 완전히 못쓰게 만들어 버리지 말고 새싹이 돋아 생명이 다시 움트도록 권고했다. 프란치스코는 땅을 유린하고 삶을 고문하는 모든 인간의 탐욕을 책망했다. 쓸모없이 잡힌 동물들을 풀어서 자유롭게 되돌려보낸 적이 도대체 몇 번이던가!

모든 분쟁을 넘어서

피조물을 형제로 삼는 사람들은 동시에 그 피조물들이 상징하는 모든 것에 그들 자신을 개방한다. 그들은 자연에 근거한 그들 자신의 애매한 부분들, 그들의 몸과 모든 생명력 등도 형제로 삼는다. 프란치스코는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격동 안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의 영적인 삶은 동떨어진 우주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우주적 뿌리들과 함께, “우리를 싣고 다스리는 누나요 어미인 땅”과 함께 하느님께로 나갔다. 모든 이중성이 극복되었다. 삶의 어두운 힘들이 여기서 변모되었다. 빛의 힘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겁많고 소심한 면모를 벗었다. 늑대는 길들여졌다. 숲 속으로 달려간 늑대뿐만 아니라 우리들 각자 안에 숨어있는 그 어떤 것이 길들여졌다. 삶의 공격성은 사랑의 힘으로 변형되었다. “아리고 재롱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 당신은 밤을 밝혀주나이다.”

평화 속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모든 유(類)와 형제가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피조물의 찬미에 사람들의 용서와 평화의 찬미를 덧붙이고 싶어했다. 프란치스코는 이를 모든 피조물의 일 중에서 면류관의 영광이라고 칭송한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대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서이다.”

피조물의 찬가는 자신의 전 존재를 개방하고, 완전한 인격적 실재로 태어나고, 그 안에서 욕구와 삶의 원동력이 통합되어 빛과 사랑의 원동력이 된 그런 사람의 언어이다. 이는 프란치스코의 영적 생활에, 그 충만함에 덧붙여, 태양 광채를 주었다.

프란치스코는 새 창세기의 내적 체험을 통해 피조물의 밝은 의미를 발견하였다. 첼라노는 “그는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1첼라노 82)라고 말했다. 그의 찬가는 창조주에 대한 활기찬 존경일뿐만 아니라 되어감을 경축한다. 프란치스코는 형제적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징표가 되고 있다. 이 신성한 여명의 비밀은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가난, 이 세상 사물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뤄지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가난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이게끔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면서 프란치스코는 창조주가 자기 업적에 대한 전적이고 사랑 가득한 현존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이름 날짜 조회 수

정평환 지침서 1부 4장

  • 체칠리아
  • 2004-06-12
  • 조회 수 2212

정평환 지침서1부 3장

  • 체칠리아
  • 2004-06-12
  • 조회 수 2159

정평환 지침서 1부 2장

  • 체칠리아
  • 2004-06-12
  • 조회 수 2166

[정평환]지침서 1부 1장

  • 왕은숙
  • 2003-09-12
  • 조회 수 2785

북남미 연수회 강의록-정평환 file

  • 신성길 니꼴라오
  • 2003-07-16
  • 조회 수 2851

신자유주의 담론의 종교적 특성에 관한 고찰 file

  • 체칠리아
  • 2003-06-09
  • 조회 수 2341

환경 특강

  • 체칠리아
  • 2003-06-09
  • 조회 수 4522

T 함께 있는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