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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6-1004_국제총봉사자 우리 사부 성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대축일 메시지(261004).pdf



문서번호: 3981 로마,   2026년 10월 4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올해는 프란치스칸 대희년들의 마지막 해이며, 우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지상 생애 마지막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선종을 묵상하도록 초대하면서, 그분의 온 생애를 관상하도록 함께 초대합니다. 그분의 마지막 날들은 단지 짧은 한 시기가 아니라, 그분의 온 생애에 걸친 하느님의 일을 완성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분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

 

‘트란시토’(Transito)는 ‘지나가다’, ‘건너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열어 주신 일곱 개의 문을 넘듯 일곱 단계를 거치신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따라가 봅시다. 저는 이 단계들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도 열어 주시는 문에 비유하고 싶고, 몇 가지 소박한 묵상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묵상들은 우리가 성 프란치스코를 더 잘 이해하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하느님의 이끄심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을지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곱 개의 문

 

우리가 하느님의 길을 걸을 때에는 문을 지나고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면, 이 문들은 한 방향으로만 지나갈 수 있는 문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일단 한 문을 넘어섰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를 따른다면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문들이 우리 뒤에서 닫히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을 어렵게 했던 모든 것을 막아 주시어 다음 걸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폭풍은 이 문들을 뚫고 밀려들 수 없습니다. 내적 투쟁과 불확실함, 유혹과 어려움은 이 닫힌 문을 넘어올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앞으로 이끄십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놀라운 재속 프란치스칸 성소라는 선물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삶의 길을 찾아봅시다.

 

첫 번째 문 - 위대한 사자(使者)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큰 계획들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젊은 프란치스코는 그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거의 날마다 삶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베르나르도네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그날그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에서 큰 목표를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하기 전부터, 삶의 어느 순간에 그는 그날그날만을 위해 살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시간을 보내는 대신 큰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순간적인 목표들이 하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위대한 사자, 무적의 기사가 되겠다는 그 목표가 온전히 하느님의 계획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테면 ‘성소’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작은 목표들이 더 큰 하나의 목적에 의해 모이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흩어 놓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감옥에서 바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이 작은 목표들 사이를 헤맬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드러내 주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너의 삶은 단지 그 순간과 하찮은 것들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큰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언제나 중요한 것들에 시선을 두며, 이 자세를 평생 간직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단지 현재만을 사는 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을 위한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두 번째 문 - 쓴맛에서 단맛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삶이 쓴맛이 아니라 단맛으로 가득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큰 목표를 마음에 품으면 누구나 매우 확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다고 여기면 아주 좋은 것이며, 계속 그렇게 남습니다.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면, 그처럼 확고한 사고방식에서는 그 판단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실 수 있었습니다. 회개는 사고방식의 완전한 변화입니다. 부차적인 것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거나, 일을 더 잘하거나, 더 많이 하거나, 더 적게 하거나, 약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만난 것은 전환점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여전히 말 위에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은 여전히 그에게 쓴맛을 느끼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변화시키시고, 이 두 번째 문을 넘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며 나병 환자를 끌어안도록 이끄셨습니다. 말을 멈추고, 말에서 내려, 나병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참된 변화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했고, 하느님께서는 이전에 쓰던 것을 단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나병 환자들 역시 말을 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멈추고, 우리가 타고 있는 높은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 회개는 이처럼 어렵지만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든, 나병 환자들까지도 쓰실 수 있음을 우리가 깨닫는 다면, 회개는 근본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몫을 하고,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듯 이 두 번째 문을 지나간다면, 하느님께서 나머지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일, 곧 쓴 것을 단 것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마음에 이 단맛을 품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세 번째 문 - 형제회로 이끌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삶을 나누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회개한 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단둘이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혼자서 일했습니다. 성 다미아노 성당과 다른 두 성당을 홀로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독을 찾았고, “세속을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나병 환자들을 홀로 찾아가, 홀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씀하셨듯이, “그 후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으며, 다른 이들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단둘이 머물고 싶어 했던 그 사람, 고독 속에서 살기를 바라던 그가 형제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형제적 생활은 프란치스칸 영성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형제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 성소의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재속프란치스코회의 성소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형제회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사는 영웅이나 거룩한 은수자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것, 무엇보다 성덕을 위하여 함께 힘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 주기를 바라십니다. 아무도 배제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형제 자매들을 주셨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 선물과 함께 살아갑시다!

 

 

네 번째 문 - 숲뿐 아니라 나무 하나하나를 보다

 

우리 삶의 큰 목표들은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형제들을 책임지고 있던 성 프란치스코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작은 만남 안에서 큰 이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깊이 바라보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련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단식을 포기했고, 누군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을 때에는 즉시 멈추었으며, 레오 형제에게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글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는 큰 이상과 큰 목표들이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상생활 안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형제회와 직장에서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의 사랑과 도움과 좋은 말이 필요한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쓰고자 하십니다!

 

 

다섯 번째 문 - 사랑과 수난의 선물

 

성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 산에서 특별하고 은총 가득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체험의 순간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나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그리스도께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청한 것은 자신이 몸소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신에게 가장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무엇인가를 행하려는 사람에서 그저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행하고, 이끌고, 지휘하는 대신, 오직 사랑하고 수난을 느낄 수 있기를 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오상과 그가 청한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문턱을 넘어, 선하고 올바른 일을 행하기보다는 훨씬 더 단순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살아가는 삶에 들어섰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선하고 올바른 일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사랑과 연민을 충만하고 온전하게 체험하는 삶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사랑과 자비를 ‘행하는 것’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수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에 감사드립시다. 이것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사랑과 연민 안에서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 문 – 존재의 깊이

 

우리 모두에게는 언젠가, 그저 ‘있는 것’이 훨씬 더 단순하면서도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병들고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 문을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성 프란치스코가 생애 말기에 보여 준 그 감사와 기쁨의 정신을 간직할 수 있었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움직이고, 보고, 행동하는 능력을 잃은 경험은 그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여섯 번째 문을 지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력과 건강과 힘마저 잃은 가난에 이르렀습니다. 이 문을 지나면서 그는 하느님의 손 안에서 매우 깊은 평화에 이르렀고, 그 평화에 이끌려 「피조물의 노래」를 썼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고 느끼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일곱 번째 문 —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육신의 죽음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쁜 순간이 아니며, 때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힘겨운 시간과 날을 뜻합니다. 애도를 뜻합니다. 대개는 침묵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악도 침묵에서 시작됩니다. 침묵은 음악의 일부이며 준비입니다. 죽음은 이 지상에서의 삶의 끝이지만, 삶이 최종적으로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계속 살아가리라고 믿고 희망합니다. 이것이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깨닫고 믿은 것이고,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이를 ‘트란시토’라고 부릅니다. 생애의 바로 이 순간에 성 프란치스코는 존재의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받은 모든 것이 이 한순간에 모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느님을 찬미하며 임금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단맛을 체험했습니다. 야고바 부인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과제를 받으면 서뿐 아니라, 내면의 단맛도 체험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형제회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한 사람씩 축복했으며, 가장 큰 사랑과 가장 큰 수난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선종은 평화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을 어떤 것의 끝이 아니라 하나의 건너감으로 받아들여 살았습니다. “그의 형제이며 제자들 가운데 명성이 적지 않은 한 사람이 … 지극히 거룩한 사부의 영혼이 넓은 물 위로 곧장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영혼은 달만큼 크고 태양처럼 빛나는 별과 같았으며, 작은 흰 구름에 실려 있었다.”

 

 

계속 나아갑시다!

 

하느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를 전 생애에 걸쳐, 10월 3일 밤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끄셨습니다. 그는 외적인 것의 중요성에서 내적인 것의 절대적인 중요성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행동과 말로 드러내던 떠들썩한 삶에서, 행동과 말마저 사라지고 오직 존재만 있는 완전한 침묵의 삶에 이르렀습니다. 분주한 삶에서 느린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선포하던 데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이 오히려 받아들이고 경청하는 것을 뜻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위대한 임금의 사자”가 되었지만, 처음에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고 어디로 데려가시는지 눈여겨봅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생각에서 당신의 계획으로, 이 세상의 것들에서 하느님의 것들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하늘나라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바라보며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서 나보다 더 비천한 피조물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 일곱 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모든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2026년 10월 4일 대축일이 지난 뒤에 우리의 삶이 이전과 똑같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마지막 몇 해를 기억하면서 많은 보화를 받았으며, 이것은 또한 책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보고 체험한 것에서 배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고, 우리의 형제회가 우리 성소를 살아가기에 더 좋은 곳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에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들에게 감사드립시다. 그들이 없었다면, 곧 그들의 모범과 가르침과 충실함이 없었다면, 우리 역시 프란치스칸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뒤에 올 이들도 프란치스칸 영성이 살아 있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말할 수 있도록, 이 영성을 살아가고 전합시다.

 

10월 4일에 우리는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성 프란치스코로 말미암아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트란시토(Transito), 곧 이 세상에서 하늘로 건너가신 일을 기억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선종(건너감)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성소와 사명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우리 각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모두가 “하늘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의 축복으로, 땅에서는 성령과 함께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축복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성 프란치스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여러분의 형제이며, 봉사자

 

 

 

티모르 카우저 OFS

총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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