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기면 다야?]
세상사가 각박해지다가 보니 이런 일들도 발생합니다. 한 번은 제가 빈센트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초로의 어르신이 저처럼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주변에는 그분과 같이 온 가족이나 보호자 그리고 돌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저는 눈여겨 보았다가 그분의 남루하기만한 행색을 지켜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다리가 절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바치고 그 어르신의 곁에 있다가 근처의 자판기로 가서 음료수를 하나 사고 병원 안에 있는 편의점까지 가서 빵과 우유를 사서 그 어르신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놀라신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게다가 젊은 사람도 아니고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이요?" 저는 웃으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이 이상합니까?" 그러자 그분은 조용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서울역에 가서 노숙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벌써 그런지가 150여번 정도됩니다. 차비도 들었고 떡이랑 빵, 물, 콜라와 수고가 있었습니다.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에 큰절을 하고 그것들을 예수 선교회라는 단체에 맡기고 돌아왔고 이어서 명동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의 앞부분을 화면으로 보고 치과진료를 받고 나서 병원 진료를 마치고 노점의 야끼만두로 식사하고 다시 기도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도하고 남을 돕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라면 그 사회는 선인, 악인을 떠나서 절망적인 상황이 오히려 다행인 막가파들이나 대접받는 어리석은 그리고 죄악에 대하여 불감증에 걸린 사회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는 노숙인들까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여정은 길고 고통스러운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행이 보편화되고 이것과 나눔과 베품과 그밖의 것들이 하나의 성인전을 이루듯이 사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성당에서 교회에서 서로를 헐뜯거나 자신과 타인에게 악마의 변호인 노릇을 자처하며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