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는 당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소주잔으로 한 잔 비웠고 같이 설명절 연휴를 같이 준비를 하였습니다. 사실 당뇨가 있어도 어떤 글이나 책에는 한 주에 소주 한두 잔을 괜찮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단 안주가 넉넉할 때의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보통 때는 무알콜 맥주나 일본산 과실주 캔을 마시던 저는, 그것도 한 달에 한 번 정도하면 많은 것이지만 체면치래를 하였습니다.
동생이 간 뒤 저는 술기운 때문에 작은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어났을 때는 오후 7시가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방을 썼습니다. 원래 천주교의 가정 제례에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나 저의 집안은 다 천주교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만 신자이고 다른 친척들은 천주교와 불교, 개신교를 각각 믿고 있어서 저는 제 고집 대로 하지 않아서 그들과 모종의 타협(?)을 하고 있기에 제사를 마치면 지방을 불에 태우고 나서 같이 식사를 합니다.
아침에 동생과 저의 친동생이나 다름이 없는 홍식이가 왔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같이 음식을 들고 저는 다시 정종 한 작은 소주잔으로 마셨고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고 본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며 동시에 새해의 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연도와 미사는 하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저도 2000년 대희년 전에 세례를 받았기에 절반은 구교신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종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미사가 끝나고 저는 신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안수를 받았습니다. 미사 전후에는 항상 신부님의 안수를 받는 것이 일상화된 행사처럼 되어 있었고 저는 다시 사람들과 헤어져 남문에 있는 시장으로 갔습니다. 문을 안 연 가게가 연 가게보다 더 많았고 저는 찹쌀떡을 사서 그것을 먹고 사람들이 어떻게 설날 아침을 보내는지 잘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장과 시내는 한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저는 사람들이 저처럼 어려운 처지에도 끈질긴 살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점4거리에 와서 저는 수제담배를 피우려다가 한 노인분께서 힘이 없이 길에 쪼그리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집이 어디신지 차비는 있는지 그리고 식사는 하셨는지 물어 보았고 돈을 세어 3,000원을 드리고 제 옆에 오셨을 때 찹살떡 하나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륻 드리려고 하자 그는 "됐어, 됐어...!" 하며 손사레를 치시는 것을 보고 다시 인사하고 버스를 타고 본당으로 향하였습니다.
본당에서 여자분이신 사무장님께 신부님과 몇몇 분들이 드시라고 찹살떡을 대여섯 개 드리고 나서 저는 인사하고 밖으로 나와서 성모상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상에 절하고 평화의 기도를 읽고 나서 나왔습니다. 바람은 춥지 않았고 작은 구름들이 해를 가리고 있었으나 멀리 햇살이 비치는 곳이 있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의 일들을 적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홀로 살지 못하며 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진년 새해에는 다들 운수대통하시기를 바라며 은총이 넘치는 사순시기가 다가오니 만큼 건강들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