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회
윤승환 사도 요한 드림.
좁디 좁은 구의역 9-4번 출입문.
메모지들은 뜯어지고 그 차가운 유리벽에는 그 날의 아픔을 알리는 안내문만 씌어져 있다.
한 청년이 여기서 못다한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은 그 날.
아마도 그 날도 열차는 달렸으리라.
그 날의 아픔을 나도 같이하였다.
그곳을 지날 때 마다 기도하고 고개숙이고 묵념하고 무릎을 꿇기까지 하였다.
원불교 교무님들의 손에 그 기억의 장소가 깨끗이 정돈되던 날.
나는 이제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늘 다시 백팩을 매고 그곳에 가서 그 흔적들이 남아 있음을 보고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그 청년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앉아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세 번 일어나서 두 번.
그리고 가슴을 치며 그가 영원한 안식을 얻었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다시 찾은 구의동의 길에는 그 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장의 상인들은 물건을 파느라 여념이 없고 가게는 그나마 불황에서 막 벗어난 곳처럼 생기가 있기만 하다.
한참을 걸어서 찾아간 구의동성당 서울대교구 8지구 본당이다.
그 날 이후로 얼마나 오래 나는 십자고상에 못박혀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도를 자주하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참아주기로 하였던가.
기도를 하고 나서 다시 거리로 나와서 근처의 뼈다귀 해장국집을 찾아가서 해장국 한 그릇을 시키고 고개숙여 기도하였다.
밖에는 햇볕이 쨍쨍 그리고 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는데 거리는 많이 산뜻하여졌다.
다시 돌아가는 길 열차가 출발하기 전 카톡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알리고 나는 다시 열차를 타고 그곳을 지날 때 반대편 승강장을 보고 기도를 하였다.
기차는 우리들이 말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하여 싸우고 있던 노동자들의 염원에 답할 책임이 있는 국회의사당 건너 한강을 지나고 있다.
아, 그래서 한 시인이 말을 하고 많은 운동권 시인들이 공감을 하였었구나.
휴전선은 우리나라 남과 북의 경계 155마일의 허리를 차지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갈라진 보이지 않는 철책선들 투성이라고 말이다.
부자와 빈자, 동과 서, 그리고 남성과 여성, 고용주와 노동자,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곳에 휴전선이 가로 놓아져 있노라고 말이다.
돌이켜 생각을 해 보니 우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곳곳에 있는 분단의 상처를 치워내고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여야겠다.
바람이 분다.
시계를 보니 시계는 어느덧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지금 그 청년을 생각하며 그의 짧은 생애를 생각하고 있다.
키리에 엘레이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저녁 늦게.
우리들이 6.25사변이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 저녁.
전례로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 된 날 저녁 늦게.
경기도 화성시 병점2동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위험의 외주화-기업들이 고되고 위험한 업무를 법과 제도의 바깥 쪽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 등 외부에 떠넘기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