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slider01 slider02 slider03 slider04
프란치스칸 성인/성지












 


 


축일: 9월17일


성프란치스꼬의 거룩한 상흔 축일


San Francesco d’Assisi, Impressione delle Stimmate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 사건은


육화와 수난을 통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성 프란치스코에게 정확히 알려준 사건이며


동시에 성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 극치를 이룬 사건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프란치스코로 하여금 그리스도화를 가능케 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부님의 오상 사건에 대해서는 성 보나벤뚜라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성 보나벤투라의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13장 3항)


“그는 그리스도가 세라핌의 모습을 띠고 그토록 은혜 가운데 자기를 배려해 준 방법에 대해서 대단히 기뻤으나,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동정심으로 가득찬 비애의 칼로 찔렀던 것이다.


그는 이 기적적인 환시를 보고는 놀라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은


세라핌의 영원 불멸하고도 영성적인 본성과는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환시가 사라지자 그것은 그의 마음을 열심히 불타오르게 하였으며


그의 몸에 기적적으로 그와 꼭 같은 것을 박아 놓았다.


그 때 거기서 그의 손과 발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환시에서 본 것과 똑같이


못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손과 발은 중앙이 못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못의 머리부분은 손바닥과 발등에 나 있었고,


반면 못 끝 쪽은 반대편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못 머리 부분은 검고 둥글었으나 그 끝은 마치 망치로 박힌 듯이 길게 뒤로 휘어 있었다.


그 부분은 주위의 살보다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오른쪽 옆구리는 마치 창으로 꿰뚫린 것 같았으며 검푸른 상처가 찍혀 있었는데,


자주 피가 흘러나와 그의 수도복과 바지가 피에 물들었다.”


 


*성 보나벤투라 축일:7월15일,게시판1274 번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676번,140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t. Francis Receiving the Stigmata - GRECO, El


1577-79.Oil on canvas.Walters Art Gallery, Baltimore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인 권고


13.인내


1)"평화의 사람은 복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5,9)


하느님의 종은 일이 뜻대로 잘 될 때에는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겸손을 지니고 있는지를 본인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2)그러나 자기의 뜻을 받들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 할 때


그가 보여 주는 그 정도의 인내심과 겸손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그 이상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Legend of St Francis: 19.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1297-1300.Fresco, 270 x 230 cm. Upper Church, San Francesco, Assisi


 


십자가에 못박힌 세라핌을 닮은 모습의 환시(토마스 첼라노 전기 제1생애,제2부 3장)


 


94. 프란치스코가 자기의 영혼을 하늘에 되돌리기 2년 전,


그러니까 그가 알베르나 은둔소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환시 안에서, 여섯 날개를 가진 세라핌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 하나를 자기 위에서 보았다.


그 사람은 두 손을 뻗고 있었으며, 두 발은 모아진 채 십자가에 고착되어 있었다.


날개 둘은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고, 두 날개는 날으려는 듯이 펼쳐져 있었으며,


나머지 두 날개는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지존하신분의 복된 종은 이것을 보자 그만 감탄하였지만, 이 환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너그럽고 인자한 세라핌의 모습에 그는 무척이나 즐거웠고 기뻤다.


그 천사의 아름다움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천사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는 사실과,


그 찌르는 듯한 아픔이 차츰 프란치스코를 두려움으로 몰아갔다. 그러자 그는 일어섰다.


그는 이를테면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으며, 즐거움과 괴로움이 그 안에서 서로 교차하였다.


도대체 이 환시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의 영혼은 그 뜻을 알아내려고 노심초사하여 괴로와하기에까기 이르렀다.  


 


이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그 뜻을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게 되었고,


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환시가 성인의 가슴을 곤혹스럽게 만드는가 했더니,


그 못자국들이 성인의 손과 발에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가 방금 전에 그의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에게서 본 그대로의 자국이었다.    


 


95. 그의 손과 발 한가운데가 못으로 뚫린 것 같았고, 못대가리가 손바닥과 발등에 나타났으며,


뾰족한 못끝은 반대편에 있었다.


손의 자국들은 손바닥 쪽에서는 둥글었고, 손등 쪽에서는 길어져 있었다.


손등 위로 밀려 솟은 작은 살점들은 못의 끝모양을 하고 있었다.


발에도 마찬가지로 못자국이 찍혀 있었고, 그렇게 비슷하게 딴 살보다 솟아 있었다.


또한 오른쪽 옆구리는 마치 창에 찔린 듯하였고,


그 상처로 피가 자주 쏟아져 나와 그의 투니카와 팬츠를 여러 번 물들였다.  


 


애석하여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힌 이종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볼 만한 자격이 있었던 사람은 정말 한둘에 불과하였으니!


그가 살아 있을 때, 그 상처를 보기에 합당했던 엘리아는 행복하였다.


손으로 직접 만져 본 루피노 역시 행복하였다.


이 루피노 형제가 한번 거룩한 사람을 문질러 주려고 그의 가슴에 손을 댔을 때에


루피노의 손이 우연히 프란치스코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 보배로운 상처를 건드리게 되었다.


손이 닿자마자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하느님께 루피노 형제를 용서해 주십사고 소리쳤다.  


 


프란치스코는 수도원 밖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상처를 숨기기에 온갖 노력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측근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그것을 매우 세심하게 숨겼기 때문에,


항상 곁에서 헌신적으로 따르는 대부분의 형제들조차도 오랫동안 이 상처에 대해서 알지 못했었다.  


 


지극히 높으신 종이자 친구인 그는


자신이 마치 가장 값진 보석으로 꾸며지듯 많고 큰 진주로써 치장이 되어 있고,


신묘한 방법으로 딴 모든 사람의 영광과 영예 위에 안배되어 있음을 보았지만,


그는 마음이 우쭐해지지 않았으며, 또한 헛된 영광을 찾아서 남을 기쁘게 해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호감이 그에게 주어진 은총을


조금이라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으로 그 사실을 숨겼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Scenes from the Life of Saint Francis: 1. Stigmatization of Saint Francis - GIOTTO di Bondone


1325.Fresco, 390 x 370 cm. Bardi Chapel, Santa Croce, Florence


 


오상 축일은


성프란치스꼬가 천상 세계로 옮겨가기 2년전 라베르나에서 미카엘 축일(9월29일)을 준비하는


40일 기도를 하던 중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세라핌 환시를 보게 되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14일,게시판136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이 때 세라핌의 6 날개 가운데 십자가를 보았으며 환시가 사라진 뒤


성인께서는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는 마음과 더불어 주님의 다섯 군데의 수난 상처가 각인 되어 고통을 느꼈다.


 


성프란치스꼬의 오상은 수난 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닮도록 자신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의미를 지니며


그리스도의 케노시스 즉 가난의 구체적 표지이며 성인의 일생을 극적으로 요약하는 사건인 것이다.


성프란치스꼬는 오상을 받음으로 완전한 해방 체험을 하게된다.


 


성인이 돌아가신 후 면밀한 조사를 거쳐 교회 법적으로 진실임이 선언되었고


1304년 베네딕도 11세가 축일로 제정하였으며


14세기말부터 프란치스칸들은 특별한 전례로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 GIOTTO di Bondone


1300.Tempera on wood, 314 x 162 cm.Musee du Louvre, Paris


 


성 보나벤뚜라가 쓴 성프란치스꼬의 소전에서


 


거룩한 오상을 통하여 프란치스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녔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무렵의 어느 날 아침 그 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불같이 빛나는 여섯 날개를 가진 세라핌이 하늘 높은 데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빠른 날개 짓으로 하느님의 사람 프란치스꼬에게 가까이 와 공중에 떠 있었다.


이때 프란치스꼬는 그 천사가 날개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본 프란치스꼬는 매우 놀랐다. 그의 마음은 곧 환희와 비탄으로 가득 찼다.


그리스도의 이 은혜로운 출현이 그렇게 다정하고 경이로운 모습일 수가 없어서


말할 수 없이 강한 환희를 느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소름 끼치는 광경을 바라보고는


그만 영혼이 저미는 듯이 한없는 비탄과 연민을 느꼈다.


 


내밀하고도 다정한 대화 후 발현이 사라지자 그의 마음은 내적으로 세라핌과도 같이 활활 불타 올랐고,


그의 몸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각인 되었다.


즉시 그의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드러났다. 손등과 발등에는 못 머리가,


그리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못 끝을 볼 수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는 창에 찔린 것 같았고 그 주위의 살은 벌겋게 충혈 되었고


그 상처로부터는 거룩한 피가 흘러내렸다.


 


프란치스꼬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새겨진


그리스도의 상흔에 대한 이 새롭고 탄복할 기적은 전 세기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이렇게 그는 새사람으로 산을 내려왔다.


이제 그의 몸에는 예술가의 손으로 돌이나 나무에 새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손으로 새겨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www.ofmconv.or.kr


 



 


Stigmatization of St Francis - GADDI, Taddeo.


Stained glass window.Cappella Baroncelli, Santa Croce, Florence


 


사도 바오로의 디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3,14-16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속히 가서 그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만일 내가 늦어지더라도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입니다.


우리가 믿는 종교의 진리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성령이 그분의 본성을 입증하셨으며, 천사들이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만방에 전해져서 온 세상이 그분을 믿게 되었으며, 영광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St Francis Receiving the Stigmata - MASTER of San Francesco Bardi
1240-50 Tempera on wood, 81 x 51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9.Canto Gregoriano-Salve Festa Dies


 


 


 


 


 


 


 


San Francesco d'Assisi, Impressione delle Stimmate
17 settembre
 
Il Martirologio Romano al 17 settembre rievoca: “Sul monte della Verna, in Toscana, la commemorazione dell'Impressione delle sacre Stimmate, che, per meravigliosa grazia di Dio, furono impresse nelle mani, nei piedi e nel costato di san Francesco, Fondatore dell'Ordine dei Minori”.
Poche e sintetiche parole per descrivere un evento straordinario, e mai sino ad allora verificatosi, che si compì sul monte della Verna, mentre un’estate della prima metà del ‘200 volgeva al termine, e che schiere innumerevoli di santi, uomini e donne di Dio, ripeterono nella loro vita, a volte anche in maniera assai curiosa. Emblematico fu il caso delle stigmate di S. Elisabetta d’Ungheria (un’altra santa “francescana”), da cui pare nascessero fiori, forse dei gigli, che venivano tagliati e posti sull’altare.
Anche numerosi artisti si ispirarono a quel primo episodio, immortalandolo in tele ed affreschi. Basti solo ricordare qui, tra i più famosi, quelli di Giotto nella Basilica superiore del Poverello in Assisi.
Poche parole quelle del Martirologio, dunque. Maggiori dettagli li forniscono i primi biografi del Santo. In special modo, S. Bonaventura da Bagnoregio che, nella sua “Legenda Major”, non manca di riferirne con dovizia anche i particolari.
Correva l’anno 1224. S. Francesco d’Assisi, due anni prima di morire, voleva trascorrere nel silenzio e nella solitudine quaranta giorni di digiuno in onore dell'arcangelo S. Michele. Era, del resto, abitudine del Santo d’Assisi ritirarsi, come Gesù, in luoghi solitari e romitori per attendere alla meditazione ed all’unione intima con il Signore nella preghiera. Sapeva, infatti, che ogni apostolato era sterile se non sostenuto da una crescita spirituale della propria vita interiore. Molti luoghi dell’Umbria, della Toscana e del Lazio vantano di aver ospitato il Poverello d’Assisi in questi suoi frequenti ritiri.
La Verna era uno di questi e certamente era quello che il Santo prediligeva. Già all’epoca di Francesco era un monte selvaggio – un “crudo sasso” come direbbe Dante Alighieri – che s’innalza verso il cielo nella valle del Casentino. La sommità del monte è tagliata per buona parte da una roccia a strapiombo, tanto da farla assomigliare ad una fortezza inaccessibile. La leggenda vuole che la fenditura profonda visibile, con enormi blocchi sospesi, si sia generata a seguito del terremoto che succedette alla morte di Gesù sul Golgota.
Esso era proprietà del conte Orlando da Chiusi di Casentino, il quale, nutrendo una grande venerazione per Francesco, volle donarglielo. Qui i frati del Poverello vi costruirono una piccola capanna.
In quello luogo Francesco era intento a meditare, per divina ispirazione, sulla Passione di Gesù quando avvenne l’evento prodigioso. Pregava così: “O Signore mio Gesù Cristo, due grazie ti priego che tu mi faccia, innanzi che io muoia: la prima, che in vita mia io senta nell’anima e nel corpo mio, quanto è possibile, quel dolore che tu, dolce Gesù, sostenesti nella ora della tua acerbissima passione, la seconda si è ch' io senta nel cuore mio, quanto è possibile, quello eccessivo amore del quale tu, Figliuolo di Dio, eri acceso a sostenere volentieri tanta passione per noi peccatori”.
La sua preghiera non rimase inascoltata. Fu fatto degno, infatti, di ricevere sul proprio corpo i segni visibili della Passione di Cristo. Il prodigio avvenne in maniera così mirabile che i pastori e gli abitanti dei dintorni riferirono ai frati di aver visto per circa un’ora il monte della Verna incendiato di un vivo fulgore, tanto da temere un incendio o che si fosse levato il sole prima del solito.
Scriveva S. Bonaventura da Bagnoregio: “Un mattino, all'appressarsi della festa dell'Esaltazione della santa Croce, mentre pregava sul fianco del monte, vide la figura come di un serafino, con sei ali tanto luminose quanto infocate, discendere dalla sublimità dei cieli: esso, con rapidissimo volo, tenendosi librato nell'aria, giunse vicino all'uomo di Dio, e allora apparve tra le sue ali l'effige di un uomo crocifisso, che aveva mani e piedi stesi e confitti sulla croce. Due ali si alzavano sopra il suo capo, due si stendevano a volare e due velavano tutto il corpo. A quella vista si stupì fortemente, mentre gioia e tristezza gli inondavano il cuore. Provava letizia per l'atteggiamento gentile, con il quale si vedeva guardato da Cristo, sotto la figura del serafino. Ma il vederlo confitto in croce gli trapassava l'anima con la spada dolorosa della compassione. Fissava, pieno di stupore, quella visione così misteriosa, conscio che l'infermità della passione non poteva assolutamente coesistere con la natura spirituale e immortale del serafino. Ma da qui comprese, finalmente, per divina rivelazione, lo scopo per cui la divina provvidenza aveva mostrato al suo sguardo quella visione, cioè quello di fargli conoscere anticipatamente che lui, l’amico di Cristo, stava per essere trasformato tutto nel ritratto visibile di Cristo Gesù crocifisso, non mediante il martirio della carne, ma mediante l'incendio dello spirito” (Leg. Maj., I, 13, 3).
Fu Gesù stesso, nella sua apparizione, a chiarire a Francesco il senso di tale prodigio: “Sai tu … quello ch' io t’ho fatto? Io t’ho donato le Stimmate che sono i segnali della mia passione, acciò che tu sia il mio gonfaloniere. E siccome io il dì della morte mia discesi al limbo, e tutte l’anime ch' io vi trovai ne trassi in virtù di queste mie Istimate; e così a te concedo ch' ogni anno, il dì della morte tua, tu vadi al purgatorio, e tutte l’anime de’ tuoi tre Ordini, cioè Minori, Suore e Continenti, ed eziandio degli altri i quali saranno istati a te molto divoti, i quali tu vi troverai, tu ne tragga in virtù delle tue Istimate e menile alla gloria di paradiso, acciò che tu sia a me conforme nella morte, come tu se’ nella vita” (“Delle Sacre Sante Istimate di Santo Francesco e delle loro considerazioni”, III considerazione).
Continuava ancora S. Bonaventura che, scomparendo, la visione lasciò nel cuore del Santo “un ardore mirabile e segni altrettanto meravigliosi lasciò impressi nella sua carne. Subito, infatti, nelle sue mani e nei suoi piedi, incominciarono ad apparire segni di chiodi, come quelli che poco prima aveva osservato nell'immagine dell'uomo crocifisso. Le mani e i piedi, proprio al centro, si vedevano confitte ai chiodi; le capocchie dei chiodi sporgevano nella parte interna delle mani e nella parte superiore dei piedi, mentre le punte sporgevano dalla parte opposta. Le capocchie nelle mani e nei piedi erano rotonde e nere; le punte, invece, erano allungate, piegate all'indietro e come ribattute, ed uscivano dalla carne stessa, sporgendo sul resto della carne. Il fianco destro era come trapassato da una lancia e coperto da una cicatrice rossa, che spesso emanava sacro sangue, imbevendo la tonaca e le mutande” (Leg. Maj., I, 13, 3).
A proposito ancora dei segni della Passione, il primo biografo del Santo, l’abruzzese Tommaso da Celano, nella sua “Vita Prima di S. Francesco d’Assisi”, sosteneva che “era meraviglioso scorgere al centro delle mani e dei piedi (del Poverello d’Assisi), non i fori dei chiodi, ma i chiodi medesimi formati di carne dal color del ferro e il costato imporporato dal sangue. E quelle stimmate di martirio non incutevano timore a nessuno, bensì conferivano decoro e ornamento, come pietruzze nere in un pavimento candido” (II, 113).
Nonostante le ampie descrizioni e resoconti ed il fatto che vi fossero numerosi testimoni oculari delle stigmate, non può tacersi la circostanza che la bolla di canonizzazione di S. Francesco del 19 luglio 1228 “Mira circa nos”, risalente ad appena due anni dopo la morte del Santo, non ne faccia alcun cenno.
Non mancarono in verità, già da parte di alcuni contemporanei, contestazioni ed opposizioni, ritenendo quei segni impressi nelle carni del Patrono d’Italia frutto di una frode.
Lo stesso Gregorio IX, prima di procedere alla canonizzazione di Francesco, pare nutrisse dei dubbi riguardo a quel fatto prodigioso. E’ sempre S. Bonaventura, nel capitolo della sua “Legenda Major” dedicato alla “Potenza miracolosa della Stimmate” del Poverello, a parlarne.
Scriveva che “Papa Gregorio IX, di felice memoria, al quale il Santo aveva profetizzato l’elezione alla cattedra di Pietro, nutriva in cuore, prima di canonizzare l’alfiere della croce (cioè S. Francesco), dei dubbi sulla ferita del costato. Ebbene, una notte, come lo stesso glorioso presule raccontava tra le lacrime, gli apparve in sogno il beato Francesco che, con volto piuttosto severo, lo rimproverò per quelle esitazioni e, alzando bene il braccio destro, scoprì la ferita e gli chiese una fiala, per raccogliere il sangue zampillante che fluiva dal costato. Il sommo Pontefice, in visione, porse la fiala richiesta e la vide riempirsi fino all'orlo di sangue vivo. Da allora egli si infiammò di grandissima devozione e ferventissimo zelo per quel sacro miracolo, al punto da non riuscire a sopportare che qualcuno osasse, nella sua superbia e presunzione, misconoscere la realtà dei quei segni fulgentissimi, senza rimproverarlo duramente” (Leg. Maj., II, 1, 2).
Tale episodio fu magistralmente rievocato da Giotto negli affreschi della Basilica superiore del Santo in Assisi.
La Chiesa, comunque, dopo maturo giudizio, con ben nove bolle pontificie (di Gregorio IX, di Alessandro IV e di Niccolò III), susseguitesi tra il 1237 ed il 1291, difese la realtà delle stigmate di Francesco, senza peraltro esprimere un’interpretazione definitiva del fenomeno, la cui genesi è soprannaturale e deriva dall’Amore.
Non a caso un dottore della Chiesa, S. Francesco di Sales, nel suo “Trattato dell'amor di Dio” del 1616, metteva in relazione le stigmate del Santo d'Assisi con l'amore di compassione verso il Cristo crocifisso, affermando che quest’ultimo trasformò l’anima del Poverello in un “secondo crocifisso”. S. Giovanni della Croce aggiungeva che le stigmate sono la manifestazione, la conseguenza della ferita d'amore e che per renderle visibili occorresse un intervento soprannaturale.
La Chiesa riconobbe la straordinarietà del fenomeno verificatosi nel 1224, inteso quale segno privilegiato concesso da Cristo al suo umile servo di Assisi, anche da un punto di vista liturgico, inserendo la ricorrenza nel calendario. Papa Benedetto XI Boccasini da Treviso, infatti, concesse all’Ordine Francescano ed all’intero Orbe cattolico di celebrarne annualmente il ricordo il 17 settembre.
Autore: Francesco Patruno
_______________________
Aggiunto il 29-Aug-2003
Letto da 3886 persone
 


 


 


Francis of Assisi
 
Also known as
Francis Bernardone; il Poverello
Memorial
4 October
Profile
Son of Pietro Bernadone, a rich cloth merchant. Though he had a good education and became part of his father's business, he also had a somewhat misspent youth. Street brawler and some-time soldier. Captured during a conflict between Assisi and Perugia, he spent over a year as a prisoner of war. During this time he had a conversion experience, including a reported message from Christ calling him to leave this worldly life. Upon release, Francis began taking his religion seriously.


He took the Gospels as the rule of his life, Jesus Christ as his literal example. He dressed in rough clothes, begged for his sustenance, and preached purity and peace. His family disapproved, and his father disinherited him; Francis formally renounced his wealth and inheritance. He visited hospitals, served the sick, preached in the streets, and took all men and women as siblings. He began to attract followers in 1209, and with papal blessing, founded the Franciscans based on a simple statment by Jesus: "Leave all and follow me." In 1212 Clare of Assisi became his spiritual student, which led to the founding of the Poor Clares. Visited and preached to the Saracens. Composed songs and hymns to God and nature. Lived with animals, worked with his hands, cared for lepers, cleaned churches, and sent food to thieves. In 1221 he resigned direction of the Franciscans.


While in meditation on Mount Alvernia in the Apennines in September 1224, Francis received the stigmata, which periodically bled during the remaining two years of his life. This miracle has a separate memorial on 17 September.


In the Middle Ages people who believed to be possessed by Beelzebub especially called upon the intercession of Saint Francis, the theory being that he was the demon's opposite number in heaven.
Born
1181 at Assisi, Umbria, Italy as Francis Bernardone
Died
4 October 1226 at Portiuncula, Italy of natural causes; relics in Assisi, Italy
Canonized
16 July 1228 by Pope Gregory IX
Readings
Alms are an inheritance and a justice which is due to the poor and which Jesus has levied upon us.


- Saint Francis of Assisi
--------------------------------------------------------------------------------
Sanctify yourself and you will sanctify society.


- Saint Francis of Assisi
--------------------------------------------------------------------------------
It was through his archangel, Saint Gabriel, that the Father above made known to the the holy and glorious Virgin Mary that the worthy, holy and glorious Word of the Father would come from heaven and take from her womb the real flesh of our human frailty. Though he was wealthy beyond reckoning, he still willingly chose to be poor with his blessed mother. And shortly before his passion he celebrated the Passover with his disciples. Then he prayed to his Father saying: "Father, if it be possible, let this cup be taken from me."


Nevertheless, he reposed his will in the will of his Father. The Father willed that his blessed and glorious Son, whom he gave to us and who was born for us, should through his own blood offer himself as a sacrificial victim on the altar of the cross. This was to be done not for himself through whom all things were made, but for our sins. It was intended to leave us an example of how to follow in his footsteps. And he desires all of us to be saved through him, and to receive him with pure heart and chaste body.


Let us also love our neighbors as ourselves. Let us have charity and humility. Let us give alms because these cleanse our souls from the stains of sin. Men lose all the material things they leave behind them in this world, but they carry with them the reward of their charity and the alms they give. For these they will receive from the Lord the reward and recompense they deserve. We must not be wise according to the flesh. Rather we must be simple, humble and pure. We should never desire to be over others. Instead, we ought to be servants who are submissive to every human being for God's sake. The Spirit of the Lord will rest on all who live in this way and persevere in it to the end. He will permanently dwell in them. They will be the Father's children who do his work.


- from a letter written to all the faithful by Saint Francis of Assisi
--------------------------------------------------------------------------------
Jesus is happy to come with us, as truth is happy to be spoken, as life to be lived, as light to be lit, as love is to be loved, as joy to be given, as peace to be spread.


- Saint Francis of Assisi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이름 날짜 조회 수
748 프란치스칸 성인 오, 영원한 진리여,참스런 사랑이여,사랑스런 영원이여-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고백록에서 안젤라 2009-08-28 4388
747 프란치스칸 성인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축일:8월28일) 안젤라 2009-08-28 42045
746 프란치스칸 성인 복되신 동정마리아 탄신 축일(9월8일),성모님 축일표 안젤라 2009-09-10 8037
745 프란치스칸 성인 옛것은 사라지고 모든것은 새롭게되었도다-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주교 안젤라 2009-09-10 4125
744 프란치스칸 성인 9월9일 복녀 세라피나 스포르자(2회) 안젤라 2009-09-10 14881
743 프란치스칸 성인 9월10일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오 안젤라 2009-09-10 16724
742 프란치스칸 성인 9월11일 성 요한 가브리엘 퍼보일러 순교자 안젤라 2009-09-10 5089
741 프란치스칸 성인 9월12일 성 구이도(귀) 안젤라 2009-09-11 4312
740 프란치스칸 성인 9월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 안젤라 2009-09-11 5325
739 프란치스칸 성인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며 죽는 것도 이득이 됩니다-성 요한 크리소스또모 주교힉지 안젤라 2009-09-11 4575
738 프란치스칸 성인 9월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안젤라 2009-09-11 7429
737 프란치스칸 성인 9월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안젤라 2009-09-11 12985
736 프란치스칸 성인 9월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안젤라 2009-09-11 5103
735 프란치스칸 성인 9월17일 성 로베르또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안젤라 2009-09-11 4409
734 프란치스칸 성인 9월17일 성녀 힐데 가르다 안젤라 2009-09-11 7525
» 프란치스칸 성인 9월17일 성프란치스꼬의 거룩한 상흔 축일 안젤라 2009-09-11 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