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생각은 각기 차이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어떤 이는 정말 돈을 버는 것이 행복이고 어떤 이는 많은 여자와 교제하는 것이 행복이고 어떤 이는 명예를 얻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저는 그 무엇보다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기도의 행복이며 성체조배는 1시간 가량 할 때도 있을 정도로 아주 기분 좋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코로나19 기간 저는 대면 미사에 참석할 수가 없어서 틈틈히 성체조배를 하였고 그것이 저의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어떨까요?
저는 남들과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손가락질 받지 않는다면 그누구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도 예쁘고 젊은 연예인들을 좋아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대충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꼴불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즐기고 잘 살아야 하지만 정도를 지키고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존감을 잃을 정도로 품위를 잃으면 이는 크게 위험합니다. 즉 그것이 범죄라고 부를 정도의 일탈행위가 되면 매우 곤란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린이 같은 순진한 신앙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어떨까요? 동기가 순수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옳은 일이 아니듯 그밖의 것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를 강하게 나무라시는 것을 성경 즉 복음서에서 보게 되며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도 그런 지적을 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에는 남녀노소의 차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비난하고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도 다 이해가 됩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정진석 추기경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단 위에 오르려는 사람은 속곳을 입어야 한다. 즉 어떤 일을 할 때는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분 같은 도덕군자도 없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날씨가 맑게 개었습니다. 이런 말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십시다. 영적 육적 혼적으로 말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