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끔 이단과 사이비, 아니 신흥종교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은 참 자신에 차 있고 당당합니다. 그래서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이나 순진한 사람들이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넘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나 그 이유가 대부분 잘못된 선민의식과 잘못된 구원관 그리고 요한 계시록 즉 요한 묵시록을 교도권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멋대로 해석하는 오류에 따르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요한 복음이 쓰여진지 최대 20년 안에 쓰여졌고 당시는 교회가 잔인한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고 사도 요한 또한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하기는 요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선한 제자였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을 하던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곱 교회,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표징을 우리 시대에도 각인시켜 준 만큼 대단한 열정과 사랑과 앞을 내다 보는 예지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요한 사도가 왜 그처럼 잔인하고 철저한 심판을 하시는 주님을 그려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철저한 회개와 정화를 강조하였음을 이해하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는 죄를 정화하고 회개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느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설명한 동시에 하느님의 뜻으로 구원받을 그리스도인이 매우 많음을 12×12×1,000으로 나타낸 것이며 또한 구원과 심판이 함께함을 드러내 보여 준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나 영적 존재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으로 해석되며 지복천년이라는 말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느님의 구원의 완성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과 같음이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두 가지 경우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음의 길로 완고하게 줄달음질 하는 것 즉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하느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에게도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것과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꺼이 알고 나아가는 참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