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은 어떠했을까요? 원래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적 환시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측별한 감흥이나 느낌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저 공부도 잘 하고 놀기도 잘 하고 가끔씩 부모남을 골치아프게 하는 인간 내면의 세계에 눈을 뜬 그러면서도 인간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레미제라블이나 단테의 신곡이나 파우스티와 같은 책을 읽고 나서 감흥에 젖는 조숙한 아이였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십자가가 달린 교회의 예배실보다는 그곳에 있는 모래밭의 놀이터가 더 친숙하고 정이 가는 아이였고 책이나 드라마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사상을 접하는 그러한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는 아버지의 사고로 인하여 인생이 바뀌면서 비로소 인간의 실존과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 그것의 극복 그리고 승화 등에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어찌보면 보다 솔직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먹고 살기 위하여 이른 바 샤먼(무당)의 조력자로 일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것도 새끼무당이라는 아주 보절 곳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빈종교주의자나 다름이 없는 그런 아이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즉 신은 없다. 있다면 마신이나 잡신이나 귀신이 있을 뿐이다. 나중에 집안의 형편인 나아졌지만 저는 여전히 착하고 순수하면서도 신앙에 대하여는 막연히 거리감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착하고 순수하고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당찬 아이였습니다. 저는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의 정권을 싫어하여 저녁식사를 6개월 동안 먹지 않았고 그 결과로 어머니와 선생님이 상담을 하고 학교의 반장이 도시락을 준비하여 주겠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하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저는 주민등록증을 만들려고 가다가 근처의 이발소에서 삭발을 해 줄 것을 요구한 후 그대로 그 사진을 가지고 주민등록증을 만들었기에 교무주임이던 담임선생님인 수학 선생님에게 교무실로 불려가 취조(?)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강한 운동권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도 부르심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신들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신이 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인류를 사랑하 신이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고 하느님 자신이기도 한 그가 그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 수난하고 부활하여 인류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한 신이 있다. 그래, 그 신을 믿어보자."
이것이 제가 그리스도교를 선택한 이유이고 저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뒤 저는 서울의 연세대학교에 가서 198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아니, 사실은 그전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상담을 자처하였지만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고민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요즘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건지 거짓의 아비 사탄을 믿는 건지 모르게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애 안 되겠다싶어 저는 명동에서의 15년의 봉사를 접고 지금은 병점으로 내려 왔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하루에 4시간밖에 일하지는 못하지만 사실 다양한 형테로 장애인 활동가로 봉사합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신앙생활의 초심을 잃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레서 저는 이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잘 설득하고 가급적 온화한 태도를 취합니다. 가령 "교리만 조금 바꾼디면 여러분들도 개신교 거대 교단의 눈밖에 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는 정도입니다. 마칩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며 하나의 거짓도 없음을 밝힙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