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은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이 지적이 마음에 드는 것이 강시나 좀비와 같은 것들이 부활한 존재가 아니라는 지적에 딱 맞아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도 죽은 라자로를 살리셨다고 하는 것이지 죽은 라자로를 부활시키셨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나인이라는 마을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고 하지 부활시켰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몇 년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성되었을 때 교황청에서는 그의 시신을 일반에 공개하여 신심을 더 키우려고 하였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 나이든 수녀님께서는 "그가 부활했다."고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또 교황청에서는 얼마전 신자들에게 베드로 사도의 뼈를 사람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뼈들을 보고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이야기했지 베드로 사도가 허망하게 죽어 뼈만 남았다고 슬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활은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도 죽은 사람이 허망하게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며 우리들은 그를 지금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어떤 신학자들의 생각은 훨씬 진보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리워지며 그를 추억하고 기념할 때 그가 부활했다고 느끼는 것을 부활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합니다.
편안한 저녁들 되시고 영적 육적으로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