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꺼이 들어 보고 그들이 내미는 잡지 비슷한 내용을 보고 열린 마음으로 노력하려고 애를 써 보았음을 알립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흔히 개신교에서 말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그 자체였습니다. 상황은 아주 심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그들에게 던졌습니다.
1) 그들의 주장 대로 하는 말이 과연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즉 개인과 그들의 공동체 더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힘을 합한다면 "어떤 효과나 결과가 초래되고 미래가 밝아지는가?" 여기에 대하여 그들 중 시원한 답변을 전하여 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고 더욱 사람들이 분열과 갈등을 느끼게 하고 사회적 불안과 어려움들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2) 그 다음 어떤 시기와 어떤 결과를 거쳐서 그런 목포에 "저절로" 도달하게 되는가? 그들 말 대로라면 "어느 천년에 그런 교회 그런 세상을 이룰 수가 있는가?" 즉 "얼마나 많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도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즉 여기서는 사람들이 실수와 실패를 거쳐서 문제 해결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 사회과학에서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s)라고 부릅니다.
3) 그리고 과연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 인류는 "언제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가 있는가?" 즉 "그들의 주장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러한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고 "과연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회복이 가능하게 될 수가 있겠는가?" 이 질문에도 확실히 대답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이나 집단도 어느 정도 그런 상흔이 남거나 아무리 잘 감춘다고 하여도 그런 과정이 당연히 사람에게 양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미래에 대하여 핑크빛 낙관론적인 생각을 접하거나 그와 정반대로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라도) 위대한 것은 과거를 통하여 학습하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인생이 바뀌고 진보한다는 것이며 사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낙관론이나 비관론도 다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한 주간 동안 건강들 하셨으면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