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주님의 은사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선물과 유산만을 노리는 탕자의 길을 가는 것 같고 차라리 아버지 없는 고아의 길을 가는 것 같은 것입니다.
또한 모든 지혜는 주님과 같이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지 주님을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죽은 지식만이 따를 뿐입니다.
요즘 저도 궁핍한 가운데 남들의 도움으로 그래도 가장 노릇을 하려고 노력하나 사실 지혜는 사도 바오로 즉 바울 사도처럼 넉넉할 때나 부족할 때나 모자람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넘어지는 이유는 자신이 지닌 욕심이 너무 큰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아니면 악한 대적의 흉계에 길을 잘 택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만일 한 해 내내 햇볕만 내리쬐는 곳은 사막이 될 것이요 같은 궁핍함이 드러나 있다고 해도 광야는 다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막의 모래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는 순간에 당신의 땅을 주님께 옥토로 봉헌하는 것은 비록 순간이기는 하나 비가 올 때 기꺼이 마음을 열어 하느님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비를 저축하여 이웃에게 나누어 온갖 생물이 자라나게 하는 배려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다르더라도 성령은 다 같은 성령이라는 자세를 갖는 것이요 아픈 지체는 저도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자주 하지만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당신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즉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자요 죄인은 하느님 즉 하나님의 길을 알면서도 그가 스스로 의롭다 하여 교만과 위선으로 포장하고 의인의 지혜와 충고와 조언을 듣지 않고 스스로 겸손하다고 자신하여 자신의 들보를 볼 수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도 어제 그 급여를 받았는데 지금 제 수중에는 얼마 남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저의 잘못이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상과 현실을 파악하여 자중할 것은 자중하고 청할 것은 청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어짜피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감이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영혼의 불멸을 믿고 "굳세어라!"(Be strong)이라는 시를 쓴 미국의 한 시인이나 "교회 오빠."라는 영화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상과 현실을 파악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무엇으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가를 당신 스스로에게 진중히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