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나는 101여단 1대대 1중대의 자대 배치가 확정되면서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입영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잠시 놀랐다. 주가가 반토막이 난 것이었고 코스닥의 상황은 과연 처참할 지경이었다. 증시는 카오스 상태에 빠졌고 사람들은 증권거래소에서 주문 용지를 날리며 시위를 벌였다. 그때는 사이드카 제도가 없었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였다.
내가 부도난 한보그룹의 회사에 근무하다가 당진으로 좌천되고 나서 회사를 관두고 서울로 향하여 세례를 맏기 위하여 명동에 있다가 글로발 어학원에서 알바 사기를 당하였을 때 나는 결국 병점으로 돌아와서 예비자 교리를 받다가 세례 직후 LG카드의 대출금의 결제가 불가하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IMF 경제위기를 받았다. 내가 예견한 국가부도가 현실화되던 날이었고 우리나라 경제는 장기간 침체에 빠졌다.
나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그때 나의 통장은 잔고가 제로(Zero;0)가 되었다, 이때는 미국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였고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은행의 연쇄부도로 세상은 금융위기에 바졌다. 이때는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의 시절이었다.
그리스발 유럽의 금융위기 시 나는 교황청 대사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안의 칙원들에게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무료로 나누어 주던 사회교리책 "세상속의 그리스도"라는 책을 줌으로서 유럽의 금융위기는 이른 바 구조조정의 열풍으로 위기를 조기 진화할 수가 있었다.
내가 문프 시절 나는 다시 고용되었고 거의 활발한 활동을 인터넷망에서 하였다. 그리고 주가는 최고치인 3,300선까지 올랐다. 그 뒤 서서히 떨어져서 나는 결국 그것이 곧 2,5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는 그 선에서 머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 나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다시 8번째의 위기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는 나 자신이 건강이 악화되거나 재정적 위기에 바졌을 때 마다 거의 내가 겪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겪을 때 마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노력하였다. 문제는 나 하나의 문제에서만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전문의들과 임상심리사들도 어떻게 알아 볼 수 없는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