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누구일까? 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중국에서 최초의 코로나19 즉 당시에는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전한 말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들의 판단 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표징을 보여주시거나 어디에 발현하여 중대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즈음에 나는 화성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탸 즉 서남부IL이라는 곳에서 시간제 게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였다. 나는 출퇴근 때 마다 그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들보다 그것을 먼저 느끼는 노랑 카나리아라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2년 뒤의 시간이 흘러서 나는 명동을 찾았다. 당시는 6차 대유행의 끝자락이었고 사람들은 조금 느슨한 방역 체계 안에서 평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명동을 찾아서 그곳에서 늘 사람들과 만나는 성모동산에서 성모상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자주 보던 한 나이든 아주머니에게 가서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뭐 도와드려야 할 일은 없으신지요?"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리 가요. 나 거지 아저씨, 몰라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실소를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교구청 별관 근처에 사람들이 흡연하려고 모이는 곳에 가서 흡연장소에서 수제 담배를 피우고 나서 조용히 그곳에서 기도를 드렸다. 한 사제인 듯한 나이든 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마치 희귀동물을 보듯 관찰하였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말을 하였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였다. "정신 차리십시오...!"
그는 당황하였는지 곧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다시 성호경을 바치고 주모경을 바치고 5단묵주를 굴리고 나서 그곳을 내려왔다. 그 나이든 자매님이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냉정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크게 말을 하였다. "정신 차리십시오...!" 그녀는 흠칫하더니 만세라도 부르듯이 멈칫하며 나를 스쳐갔다. 그리고 내려 오니 두 쌍의 신혼부부가 자랑하는지 격하게 포옹하며 나에게 어떠냐는 듯 나를 멸시하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마스크를 약간 내리고 웃음을 보이며 그들에게 지나가며 한 마디를 하였다. "정신 차리십시오...!" 그들도 애써 태연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요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시 쉬었다가 기도를 하고 내려갔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명동성당 건물을 보며 보다 나지막하게 다들 들으라고 이야기를 하듯이 한심하다는 것처럼 이렇게 말을 하였다.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정신들 차리십시오...!"
한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신자가 바라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등산화 끈을 풀고 묶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리고 나서 명동성당을 떠나서 CPBC평화방송 앞의 거리를 지나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군요...!"
그리고 나는 꺾이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전철을 타고 병점으로 내려왔다. 어느덧 저녁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카카오의 기사들의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며칠 뒤 나는 뉴스를 보다가 나도 흠칫하고 놀랐다. TV에서 7차 대유행이 시작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로서는 내가 8차라고 부르고 싶었던 대유행의 시작이었다. "오, 주 예수여, 우리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용서하소서...! 아멘!"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그 즈음에 노태우 전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 대통령의 장례 기간에 나는 시울시청 앞의 서울광장에 가서 그를 애도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장례 때 빈소는 나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가까운 세브란스 의대에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가고자 하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렬하게 반대하여 나는 가지 못하였고 그를 위한 미사나 다름이 없는 전직 대통령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도록 본당의 신부님께 부탁하였다. 그것도 오래전 몇 번의 사달처럼 오해를 샀다. 그리고 그 즈음에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의 교구장 착좌식이 있었다. 그 미사 대부분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TV로 그 에식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박수를 치고 기립을 하였다. 지금도 자주 명동에 가지만 사람들의 교만함과 사려깊지 못함에 할 말을 잊는다. 감사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느님과 성모님께 그리고 성인, 성녀, 천사, 대천사들께 그리고 나를 결국 이해하여 준 나의 친구들과 내가 함께 하는 수원교구의 본당 신자들과 신부님들께 그리고 결국 나를 다시 찾게 만든 명동과 서울대교구의 사제들과 수도자들께 고마움을 느낀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정의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세월호 사태의 장애인 활동가들의 힘찬 노래처럼 우리는 누가 옳았고 그른지는 결국 하늘이 판가름하기 마련이다. 기억하자. 이 말의 숭고한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