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시절 승승장구하던 나는 그때도 성호경을 바쳤고 입버릇처럼 "나중에 저는 천주교로 돌아갈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1996년 2월 이후 나는 그 뒤 짧은 방황기를 거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성당으로 들어 갔다. 제대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발가벗겨 지고 다리에도 못이 박힌 채 죽음을 맞이한 한 젊은이, 그때 나의 머리속에 한 가지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때 들리던 노래 잔잔한 피아노곡에 이것이었던 것 같다. "누구십니까...?" 그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으로 개신교와는 이별이었다. 나는 직장을 여러군데 옮기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고난과 시련의 연속, 그래도 나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았던 이 노래, 어머니 죽음 뒤에 나는 부활을 95%만 믿었었는데 서서히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나서 내 믿음은 더욱 강고하여졌다. 작년 말에 베네딕토 교황님이 돌아가신 그날 나는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사랑으로 오신 주여, 십자가에 달린 주여..." 나는 지금도 그 성당의 찬란한 불빛을 기억한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하셨고 지금도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안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나의 전유물만이 아님을 안다. 우리는 다 시련과 고통의 시기가 있다. 그것이 우리를 시험하는 마귀의 그리고 악마의 사탄의 책동이든 악인들의 술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십자가의 그 젊은이는 우리에게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알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다. 이 글들과 그 시를 읽어 본 사람이거나 읽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그 어려운 시기에도 가톨릭 즉 보편교회와 함께 하였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많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이 어디 한두, 서너 곳 뿐이랴. 그러나 나는 항상 이야기를 하게 된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많으나 당신의 길은 온유하고 평탄하고 즐거운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친다. 우리는 매일 하루 하루를 맞이하며 살아간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져 버린 세상을 보며 나는 기억한다. 그 사나이가 한 말 우리는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 예수라고 부른다.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나의 말은 영원할 것이다." 이제 곧 대림이다. 예비산자 시절 윤민재 신부님이 읽어 보라고 하신 엔도 슈사쿠의 [영원한 것을]이라는 소설이 있다. 젊은이들이여, 그리고 신앙인들이여, 영원한 것을 찾아라. 그 가치는 헛되지 않는다...! 마친다. 새벽 공기가 선선한 것 같다. 즐거운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