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을 쓰신 형제님의 글을 읽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다고 해도 오해가 생길 수 있고, 혹시 그냥 지나쳐 버려야 하는 것인데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 되지는 않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가 한국에 있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형제회원님들은 물론이고, 해외에 계신 분, 프란치스칸 영성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국어만 하시면 언제 어디서든 모두 들어 오시는 곳이기 때문에 그분들 또한 불쾌감을 느끼거나 실망하고 가셔서는 안될 것 같아 일종의 의무감으로 글을 씁니다. 같은 곳에서 같은 때에 같은 일을 겪어도 천차만별로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형제님이 받으신 느낌은 그대로 존중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근 2년간 경험한 시드니 한인 재속회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곳 호주 시드니의 한인 재속 프란치스코 공동체는 2000년 11월에, 당시에는 한곳 뿐이던 한인 성당에서 이곳 OFM 칼 신부님을 모시고 첫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현재도 모임은 따로 가지지만 독립된 형제회가 아니라 호주분들로 구성된 웨스트 핌블 형제회에 속해진 공동체입니다. 매월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미사로 시작하여 모임을 가지는데, 칼 신부님께서 한국어를 못 하시고, 모이는 분들께서는 영어가 불편한 지라 처음에는 월 모임 때에 한국어 교재를 서로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는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하여 제가 2003년 초에 처음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에도 그렇게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시는 신부님께서, 그리고 웨스트 핌블 형제회 회장님께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한인들의 모임에 매월 참석하여 한인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 주시는 것에 많이 감탄하였습니다. 여느 교회 공동체와 같이 그동안 여러 분들이 새로 오셨다가 떠나시고, 꾸준히 참석하시는 일곱 분들은 2003년 11월에 종신서약을 하셨습니다. 제가 2003년 초 처음 참석하였을때 다른 몇몇의 젊은이들도 나왔었는데, 그때 기존 몇몇 분들이 모임의 진행 형식에 변화를 주기를 건의하셨고, 신부님께서 기쁘게 건의 사항을 받아들이셔서 집에서 교재를 읽고 와서 신부님께서 정해주시는 교재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 준비해 와서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질문은 교재에 나와 있는 그대로인데, 더 잘 아시겠지만 어떤 질문은 교재의 내용을 숙지했는지 점검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질문은 묵상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교재 내용 숙지 점검 질문이면 나름대로 열심히 교재를 읽어 오셔서 되도록 자세하게 답을 하려는 모습, 그리고 묵상을 필요로 할 때는 진솔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본인의 허물을 드러내며 답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월례회가 끝나면 모두 집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음식 - 이곳에서는 "한 접시"라고 하는데 - 을 나눕니다.
어디선가 들으니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은 먼 길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자의로 왔든 상황에 밀려서 왔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먼 나라에 와서 괜히 주눅들며 살다가 한국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저절로 당당해 지고 목마름을 푸는 시간이 됩니다. 워낙 우리 한국인들의 정이 음식을 통해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외국에 살면서 나누는 한국 음식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이 음식은 누구 누구가 좋아하지", 음식을 나누면서도 "이 과일이 너무 맛있어서 함께 먹으려고 사왔어요", 혹은 "나는 지난 번에 누구 누구가 해온 그거 한번 더 먹고 싶어" 부탁하기도 하고, "이건 어떻게 만들었대?"하고 서로 나누는 모습을 보며 저는 따뜻한 형제애를 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사부가 살아 계실 때 한 형제가 밤에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하자 사부가 직접 벌떡 일어나셔서 죽을 끓여 주셨다지요. 위의 글을 쓰신 형제님의 경우는 월모임 후에 늦은 시각에 다시 일터로 가시는 지라, 다른 회원분들이 일하다 드시라고 떡이나 과일이나 뭐라도 하나 손에 들려 보내려고 하시는 모습을 매월 보았습니다. 모임 시작에 늦으시면 일하다가 오기가 쉬운게 아니라고 기다릴 수 있는 한 최대한 기다리시는 모습들도 보았구요, 일하다가 오는 사람이 어떻게 음식을 준비해오겠냐며 항상 배려하시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몇달 전에는 선거가 있었지요. 여러 차례 신부님께서 공지를 하셨고, 모두들 단단히 준비를 해오라 하셨습니다. 칼 신부님과 웨스트 핌블 형제회장님의 엄격한 감독 아래 모두들 익숙하지 않은 선거 절차를 따라 회장, 부회장, 서기, 회계, 양성장 직을 맡을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 절차를 따라 선거를 하고 난뒤 신부님과 웨스트 핌블 회장님이 인준을 하셨습니다. 총 종신서약자 7분, 그중 전임회장을 제외한 6분 중에서 5명의 임원을 뽑는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더군요. 나중에 들으니 몇몇 분들이 누가 무슨 직을 맡으면 좋을 지에 대해 미리 이야기도 나누셨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좁은 한인교포사회내에서 모두들 부담스러울만치 서로 사정에 대해 잘 알고, 대부분이 재속회 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성당 모임에서도 함께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니 선거를 앞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시는 것은 자연스럽다 싶었습니다. 다만, 새로 회장으로 선출된 분이 여러 개인 사정때문에 회장을 할 자격이 없으므로 새로 뽑는게 어떻겠냐고 이후에 신부님께 말씀드렸다가, 신부님께서 형제회 회칙에 따라 정식으로 행한 선거를 다시 할 수 없고, 뽑아 준 회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말씀하시므로 순명하기로 한 사실을 제가 중간에서 통역을 했으므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 한인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모든게 완벽하고, 모든걸 올바르게 하는 공동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모로 부족한 제가 끼여 있는데, 저 때문에도 그 공동체가 완벽하기는 힘들겠지요! :) 그래도 삐뚤 빼뚤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사부의 영성을 배우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 다양한 삶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항상 순탄하게 움직일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사부의 영성을 살려고 노력하는 공동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부 프란치스코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은 모든 창조물을 하느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시고 바라 보셨을 바로 그 사랑의 눈으로 보는 것과, 항상 겸손하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모자라고 보잘 것 없는 형제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저의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우리의 자매 죽음의 순간이 올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 호주는 이제 마악 더워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보라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자카란다 나무가 뜨거운 낮 더위 이후에 쏟아지는 비바람에 온통 꽃을 땅에 떨어트려 땅까지도 보라색입니다. 어젯밤에 너무 더워 잠을 설쳤는데 오늘은 바람이 시원하여 편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