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아니 나이든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다.
윤승환 사도 요한
편의점 옆의 무인가게에서 콜라를 한 잔 마시고
늘 하듯이 내일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줄 음료수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렸다.
어라, 얘는 누구야. 길 한복판에 당당히 서 있네. 얘도 길냥인가?
아니구나, 방울이 달려 있으니 집고양이로구나. 왜 거기 있는 거니?
내가 부르자 그 녀석은 반갑게 다가온다. 나는 나의 짐 속에서 우유가 있음을 말견하였다.
이거라도 줘야겠다. 나는 손으로 우유를 꺼내서 집게손가락에 우유을 묻혀 주었다.
나는 다시 우유를 주었다. 이번에는 중지로서 그렇게 하였다. 간에 기별이라도 가는 걸까?
어쩔수없이 나는 다시 근처를 헤매다가 그릇으로 쓸 용기에 우유를 부어서 그 고양이 앞에 내밀었다.
한두 번 입맛을 다시다가 서서히 물러난다. 하긴 이런 것들이 요즘 고양이들에게는 식상하지.
나는 우유가 담긴 그릇을 그대로 두고 나서 옆으로 비켜 있는 고양이에게 역시 고양이 울음 소리로 인사하였다.
야옹, 잘 자라거라. 겨울 잘 나고 야옹, 나는 고양이를 보고 손을 흔들고 웃으며 아파트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키리에 엘레이손,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저 고양이와 다른 고양이가 겨울을 무사히 보내게 하여 주소서. 아멘.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작은 자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