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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참된 선행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믿을 만하다고 하여도 저는 과연 그런 것인가에 대하여는 철학적으로는 의문이 남는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익명의 기부자라고 하여도 그 수혜자가 고마움을 느낄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과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상한 말이 아닐 수가 없으나 이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는 물질적 축복이나 삶에 대한 자비와 은총, 그리고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영원한 생명이나 후세에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며 불리게 될 그의 이름의 경중을 느끼며 신앙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앙인이든지 하느님과 거래를 하지 않는 신앙인은 참된 의미에서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 즉 어떤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재림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성직자들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성직자들은 놀라서 당황하며 그곳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임을 확인한 다음 다음과 같이 사정을 하였습니다. "아니, 제발 왔던 곳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곳에서 계시나 하시지 무엇을 더 복잡하게 하시려고 저희를 괴롭게 하십니까...? 제발 부탁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훌륭한 성녀였습니다. 그런 그녀도 시험에 빠졌습니다. 성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버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저를 배반하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위대한 성녀답게 그녀의 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런 그녀는 3만명의 사람을 구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저는 하느님이거나 자신이 그리스도라거나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봉사를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크게 부인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름 훌륭한 신앙인이 되거나 아니면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로 살아가거나 하라는 말입니다. 왜 극단을 이야기하는가 묻는다면 저는 신앙에서는 중용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핑계나 구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이 있다면 유물론자나 무신론자들을 싫어할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분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는 유물론자나 무신론자에게 책임을 지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택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호불호를 말할 필요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바랄 것이 없듯이 하느님도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을 느끼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느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바를 길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바랄 것입니다.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자신이 다 알 수도 없고 다 할 수도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부정직한 사람입니다. 아니, 자신이 다 할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사악하고 죄악에 가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헛된 기대를 가지게 하는 망상가이거나 몽상가입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며 우리가 미사 때 기도하듯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을 맡기는 지혜를 가지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도 많은 칭찬을 받았고 저에게는 교황청 대사관에서 받은 교황 묵주가 두 개나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편지가 왔으나 거이 다 버리고 중요한 편지는 가지고 있으나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액자에 담아 보관하였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사람은 양심과 인성과 영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저는 아주 자유롭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삼천년기 교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유한자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유한자적인 인간의 무한자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도와 협력 그리고 불멸에의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이며 이것은 결국 죽음으로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결국 영원한 생명의 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바라는 천국의 아름다움을 얻는 과정인 것입니다. 


혹 꼭 그래야만 하는가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도 성서의 코할렛에서 말하듯 천 년을 두 번 산 사람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사람들은 많지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그런 허황된 꿈에서 깨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어느 시대나 어느 사람이나 사람은 상황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다 사람답게 살면 그만인 것입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첨가) 여기에 적은 이야기는 어떤 신학자들의 논리도 참조한 것이 없으며 오로지 저의 치졸하기 그지없는 사적 생각의 단편들임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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