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아주 호화로운 집에서 날 마다 잔치를 베풀고 살았습니다.
그의 상에는 늘 먹을 것과 마실 것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라자로라는 거지가 그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식탁에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누워서 잔치상에서 떨어질 음식만을 기다리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부자집의 강아지들이 라자로의 종기를 햝곤 하였습니다.
라자로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로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부자도 어느날 죽어서 땅에 묻혔습니다.
부자는 불구덩이에서 날 마다 울부짖으며 목이 말라 물을 찾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라자로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자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부탁이니 라자로를 저게 보내어 물 방울이라도 저에게 주시어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곳에서 불 가운데 신음하고 있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부자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애야,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다 누렸고 라자로는 온갖 나쁜 것을 다 격지 않았느냐? 그래서 라자로는 천국에 있고 너는 그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더더군다나 너와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가 없는 경계가 있어서 서로 가지를 못한단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여러 형제들이 있습니다. 제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어 이 무시무시한 곳에 오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브라함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다른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부자는 울며 몸부림치며 호소하였습니다.
안 됩니다. 죽은 자들 중에 그 누군가가 가야 그들이 조심하여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어처구니가 없고 불쌍하고 가엾다는 듯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다른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가령 죽은 사람들 중에 누가 살아나 그들에게 가더라도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 사회교리에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죽음으로서 부자와 라자로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현실의 세계에서는 부자도 라자로도 같이 먹고 마시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야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요? 한 번 정도는, 아니 여러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