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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아, 750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문득 버스에 내려서 교통카드와 천원 지폐 몇 장이 든 지갑을 확인하고 길을 걸었다.


수원역 앞의 육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다리가 절단되어 종아리 아래의 그곳에 광목으로 만든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 옆에 하나의 막걸리 병 하나와 종이컵 그는 말이 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을 꺼내서 돈을 확인하였다.


천원 지폐 세 장 그리고 백원 짜리와 오십원 짜리 동전이 하나 둘 느껴졌다.


잔돈을 계산하여 보니 750원, 지폐는 써야 할 돈이었는데 망서려졌다.


잠시 돈을 세어 보고 가지고 있는 잔돈을 모두 그에게 주었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고 자위하면서 그의 앞에서 자비송을 외고 돈을 건넸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 끄덕하고 흔드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다.


750원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얼마 만큼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의 옆의 막걸리 한 병을 사는데도 적어도 그 두 배 가량의 돈이 필요할 텐데.


그는 그 돈을 가지고 교회에 헌금하지은 않았을 것이 분명할 것인데...


한 잔의 막걸리를 마시기도 넉넉하지 않은 그 돈을 나는 그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준 것으로 만족한 것은 아닌지...


750원 인간이 의식주와 종교 중 어느 것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사는 것이 함당하도 옳은 일인가 나는 갈등하였다.


750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도 버거운 짐들이 있는 세상 나는 그의 앞에서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의 생색을 낸 것은 아닐까?


750원 언제고 다시 만날지를 모르는 그에게 나는 내가 천국을 가는 입장권을 헐값 750월에 구입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750원 나는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라고 그 어줍짢은 선행을 한 것일까?


750원 한 편의 편도 승차에도 부족한 돈을 가지고 나는 그의 구원을 바라며 기도하며 나의 할 일을 다했다고 만족한 것은 아닐까?


750원 날씨는 차가웠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 그보다 더 스산한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750원 이 지구 상에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750원보다 적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나는 단순히 한낱 나의 마음의 짐을 한 마디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말과 750원으로 덜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750원 주님, 저는 오늘도 주님의 다른 모습을 그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제가 더 불쌍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구원 영원한 생명 그리고 천국으로의 여정을 걷기 위한 도상에서 우리는 그 누구에게 어떤 기도와 말씀과 선행을 보여 주어야 할까요?


갈등하였던 짧은 순간 나는 다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그가 종이컵에 그 돈을 넣고 조용히 다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남루한 차림의 그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곁을 떠나는 나는 그 동전과 양심을 바꾼 것은 아닌지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지갑에 돈이 3,000원밖에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 정의, 평화의 하느님이 그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아. 750원...


윤승환

2022.06.15 20:32:56
*.235.10.186

이 시는 제가 10년도 더 지난 날에 쓴 것이며 그 때 잠시 실직하여 살고 있어 주머니에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때를 회상하며 지은 시를 옮겨 적은 것입니다. 그 때도 많은 글을 썼고 2004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였고 많은 글을 남겼으나 지금은 주로 재속회에 싣고 있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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