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나서 누님에게 말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조금 늦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 앞의 길을 따라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병점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난 후 수원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는 이윽코 출발을 하였고 저는 잠시 잠이 들었다가 정안 휴게소에 도착할 즈음에 일어나서 잠시 수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달려서 광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영산강을 건널 무렵에야 "이곳이 빛고을 광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서 관광 안매 부스에서 흡연구역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나서 그곳에서 수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도중에 사달이 있었습니다. 한 가엾은 이가 제게 적선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잔돈으로 천원 정도를 주었는데 그는 갑자기 10원짜리를 버리고 돈을 더 달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기분이 상하여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가서 천원 지폐 한 장을 더 주었는데 그는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야, 임마...!" 하며 되돌아 서는 저의 뒤에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무시하고 오늘은 좋은 날이니 기분이 상해서는 안 되겠다싶어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518번 버스가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버스를 타고 금남로와 옛 도청과 광주역과 그 밖의 곳을 거슬러 가며 시내를 살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광주는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치인들이 많이 다녀갔고 사람들이 오래 간만에 여와 야의 단합된 모습을 보고 나서 그동안의 앙금이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건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착각이었고 저는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이 아직도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도청 근처에서 사람들이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아하고 화려한 군무를 보고 저도 잠시 시름을 잊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현장을 따라서 저는 시내를 가로질러서 망월동의 묘역까지 가서 그곳에 참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광주여, 우리 민족의 십자가여...! 그대들이 없었으면 조국의 민주화도 없었다. 고이 잠들라...!" 그리고 휴대전화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 참배를 하고 난 후 그곳에서 잠시 자리를 둘러보았다가 사람들과 같이 내려 왔습니다.
마침 관광버스가 몇 대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분향하고 묵념하는 것을 지켜 보고 나서 잠시 서글프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그곳을 성역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과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었고 얼마전 기념식으로 인하여 그곳에는 많은 걸개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리본 모양의 천조각들도 가득하였습니다. 저는 그것들도 사진에 담고 싶었으나 그만두었고 그 이유은 "신성한 그들의 희생을 구경거리로 남기려는 마음이 혹 있지가 않았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대구에서 왔다는 한 청년을 만나서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518의 이야기를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2박3일의 일정으로 왔는데 많은 것들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정진석 추기경님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이데올로기가 결국 이 말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임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곧 버스 518번이 왔고 저는 광주 버스 터미널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버스에서 본 풍경을 참으로 아름다왔습니다. 사람들이 흥겨워 하는 모습, 그리고 빛고을 광주가 이 시기에 단장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면서 저는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터미널에 도착을 하였고 저는 그곳에서 내려서 노점에서 500원짜리 어묵을 3개를 사먹고 나서 지하도를 통하여 반대편 길로 나가려고 걸어 갔습니다. 한 청년이 엎드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천원지폐 석 장 즉 3,000원을 주고 나서 자리를 떠나서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 오늘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먹은 삼각 김밥과 보통 김밥을 먹은 일과 앞의 518 묘역 앞에서 마땅한 기도문이 없나 레지오 수첩을 뒤적이다가 "아, 그런 기도라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하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기 예수와 성모님께 그곳의 영혼들을 봉헌하는 기도를 간략하게 드린 것과 그 밖의 기도를 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버스는 다시금 광주를 떠나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광주 인근의 고장 장성에 들어서자 한 커다란 십자가가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성호경을 바치고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버스는 서서히 속도를 내고 있었고 저는 밤하늘을 보며 오늘의 일과를 생각하였습니다. 멀리 크고 작은 집들의 불빛이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나서 잠시 묵상하고 갈 길을 제촉하였습니다.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다시 저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추억과 경험이 없으신지요...? 부디 다른 이야기라도 골라서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 제6주일에 인사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