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기에 대하여 다시금 얼마 전에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모든 형제들](박동호 신부님은 "모두가 형제이지 않더냐"로 번역)로 돌아가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리가 없는 시냇가에서 강을 건네주는 선행을 하였다고 한다면 이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냇가, 아니 강가에서 다리를 세우기로 계획하여 공사에 착수 많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교황님은 그러한 행위를 [사랑의 정치 행위]라고 명명하십니다. 한 번의 선행이 아닌 특별한 행동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이 해소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를 한 시민이 자신의 노부모를 해 마다 공기가 깨끗하고 풍광이 훌륭한 시골에서 며칠 동안 지내게 하였다면 이는 효도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직접 도시의 숲 가꾸기에 참여하여 자신의 노부모님들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거주지와 그 도시의 노인들과 어린이들에게 좋은 휴양림과 산책길을 제공하는 정책 건의자요 입안자 또는 시행자가 되었다면 그는 노인과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 것을 부분적이나마 완성한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모든 것이 "사랑의 정치 행위"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행위를 권장하고 나아가는, 이른 바 "사랑의 정치 행위"를 가르치고 실천하며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하루 가운데 한 날을 만들어 가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찬미 예수님. 고맙습니다...!
2021년 11월 14일 늦은 저녁.
연중 제33주일이자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저녁에.
경기도 화성시 병점 22동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한 천주교신자이자 그리스도인이며 장애인 활동가로서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