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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989년 내가 Y대를 들어가던 해는 우리나라가 큰 변화를 겪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나는 연세대학교 89학번으로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亂)한 한 해였습니다.


나는 행정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지금도 학부에 행정학과가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와 고려대의 행정학과 학생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라고 자부하고들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6년 반을 머물렀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전주 촌놈"(?)에게는 서울 생활이 적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책에서 읽었던 문명사회에 대한 스스로의 환상이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도덕과 윤리,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을 직접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겪고 보니 이건 정말 장난도 아니었습니다. 종교와 사상은 더욱 그랬습니다.


저는 자연 스럽게 운동권의 학생들과 어울렸습니다. 사실 규모는 작았으나 하느님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AGAPE)는 저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생각을 저울질해 보고 꿈을 펼치기에 충분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선후배와 동년생들도 저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실망하였습니다. 당시의 대학은 크게 보수파 기독교와 급진파 기독교, 즉 좌파 기독교와 우파 기독교의 학생들, 그리고 중도를 지키던 가톨릭학생회(뉴맨)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밖의 다른 단체는 저는 잘 모르겠으나 크게 두각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좌파 기독교는 스카(SCA ;총기독학생회))와 아가페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데모도 하였고 술도 마구 퍼 마셨으며 처음으로 흡연도 하여 보았습니다. 지금은 술을 마시는 않습니다만 그때 배운 담배는 아직도 피우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선배들 중 한 여학생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것보다는 저는 혁명적으로 세상을 기독교 천국으로 바꾸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는 모든 것을 이단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도 많아서 가끔씩 보수파 기독교 학생들과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단체(동아리) 사람들과도 어렸습니다.


저에게는 체 게바라(이른바 엘 체)의 이야기와 볼리바르, 산 마르틴의 이야기와 우상호, 임종석, 임수경, 그리고 문익환, 문규현, 그리고 노무현, 이철, 그리고 장석하 등의 이름이 낯설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토 산 디노의 이름이 자꾸 떠울랐습니다. 그는 니카라구아를 해방시킨 [산디니스타 민족 해방 전선](FSLN)의 창시자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마셔대는 술과 담배, 그리고 모임은 저를 지치게는 했으나 저는 그것들을 혁명에의 열정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았습니다. 함ㅇ신 선배는 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일부러 외면했습니다. 그러한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은 결국 다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혁명에의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날 같이 모여서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함ㅇ신 선배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술판이 무르익어 가자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순간에 일생일대의 대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녀가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저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저는 마구 목청껏 민중가요를 부르며 드디어 강하게 그녀를 밀어냈습니다. 몸으로 아니라 마음으로 인간적인 사랑을 벗어나 덕의 공화국, 기독교 천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입니다.


그녀는 쓰러졌습니다. 그녀가 땅바닥에 주저 앉아버리자 선배들은 민망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녀는 업혀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도 후회하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 왜일까요...? 정의가 승리하고 마녀는 쫓겨 났으며, 이제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공정의 하느님 나라가 실현될 판국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같이 영화 [로메로](ROMERO)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이미 동아리에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도 선배들도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변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인기 형이 말했습니다. "승환아, 너는 그 "에고"(Ego)를 버리지 못하면 결국 후회할 거야...!" 그는 말없이 울며 고개를 숙인 후 잠시 뒤 흐느끼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산디니스타 민족 해방 전선의 대표와 니카라구아의 새 여성 대통령 챠모로 여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물어 볼 것이 있어서 갔던 것입니다. 저도 남모르게 흐느끼며 그곳을 나와서 정처없이 저의 단과대 건물로 올라갔습니다.


.........................................................


세월이 흘러 아가페를 다시 찾았을 때 이미 그곳은 없었습니다. 저는 차라리 사랑을 이야기하는 낭만적인 변절자의 그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으로 개종, 아니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 즉 아가페 선배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고는 합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서도 저는 천명의 큰 뜻을 깨닫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끝자락은 붙잡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가페(AGAPE)적인 주님의 사랑만이 세상을 악과 부조리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 함ㅇ신 학형에게 감사해 하고는 합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납니다. 다른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때 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오후 늦게.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후에.

경기도 화성시 병점동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윤승환

2021.06.03 18:02:09
*.69.194.26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글을 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새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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