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아멘. 반갑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고맙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와 같이 산 지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 지 모르기에 더욱 불안해 하며 그와 동시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 지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과연 이 희대의 질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낙관론적 입장 반, 비관론적 입장 반에서 현대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는 대데레사의 기도라는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너를~~~ 아,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라고 알려진 이 노래는 우리가 비록 지금 시련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암울한 상황에서 주님의 놀라우신 자비심에 힘을 얻어서 이 질병을 이겨내고 평범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전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견디고 이겨내는 사람이나 나라나 사회만이, 결국 주님의 참된 영광의 화관을 같이 쓰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한 가지 걱정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잘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 이후 인간들의 무지와 타락으로 그로 인한 새로운 감염병이나 더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늘 상존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와 비누와 더물어 살고 있고 방역을 위한 소독을 하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마스크 대신 방독면을, 그리고 손세정제 대신 온몸에 방역복과 같은, 아니 우주복과 같은 옷을 입고 외출하고 밥을 먹고 그리고 기타의 생활을 하여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아에 도시나 지역을 통채로 폐쇄하든가 아니면 출입국을 전면 제한하게 되는 극악한 상황에도 직면할 수도 있다는 기우 아닌 기우가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딱한 것은 인류의 지도자들이 아직도 각자도생의 길을 가려는 경향이 남아 있으며 그에 따라 자국이익중심주의와 폐쇄적 정책, 인종차별과 다름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나, 지금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런 사람들의 악행을 막을 방도가 아직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통하여 우리는 더 나은 세상, 보다 따듯한 세상, 보다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절망과 어두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 유명한, 나치스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 벽에 쓰여져 있었다는 말을 적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그리 형편이 좋고 허락한다면 이 이야기는 다시 이어질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워 있어도 그 너머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압니다.
지금 세상이 온통 절망뿐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넘쳐 나고 있음을 압니다."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빌며 다음 번에는 다른 이야기로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코로나19 조심들 하시고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오. 아멘.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아침.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아침에.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한 IL에서 근무 중 짬을 내어.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이 주제의 이야기가 앞으로 약간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이 주제의 제목을 바꾸어서 "코로나19에 대한 소회;삼천년기 교회의 시련."이란 제목으로 저의 졸견과 생각, 일상의 일들을 이어가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형제, 자매님들은 조심해야겠습니다. 찬미 예수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오. 아멘.
-윤 사도 요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