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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복음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겸손하고 온유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이 딱 맞게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악마를 꾸짖을 때나 성전을 정화하실 때 정말 무서울 만큼 냉정하시고 분노(이를 의노;義怒라고 합니다)하심을 표현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의 예언자들을 보면 정말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저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은 못되며 그저 애둘러서 비판하고 온유하게 타이를 정도밖에 신앙이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할 경우라도 넘지 않아야 할 정도(正道)나 기준(基準)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나마 크게 실수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이 넘어져 보았고 그 때 마다 저의 한계를 느끼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주님이 이 약한 사람에게 베푸신 은총과 축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고 모함을 받기도 하였으며 이단과 어울리는 사람이며 심지어 진정한 가톨릭신자가 아니라는 사람조차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조용히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하시오."라는 형제, 자매들과 다른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사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저도 개신교 시절이나 천주교 신자의 초기에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할 말은 꼭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둥글 둥글 하게 되었습니다만, 할 말은 어떻게든 꼭 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보면 그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다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세상은 많이 변하였습니다. 저는 51세가 되었고 한 세대를 거쳐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은 "주님의 성실한 종"이라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직은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에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히여 호렙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주 하느님으로부터 그것을 두 돌판에 받아가지고 산을 내려 옵니다. 이 수십 일 사이 백성을 우상 숭배에 빠집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모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릇된 망동으로 하느님과 모세를 격노하게 합니다. 모세는 증거판을 깨뜨리고 우상인 황금 송아지를 부수고 그 가루를 백성에게 먹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산에 오릅니다.


세례자 요한, 즉 요한 세례자는 헤로데 임금이 자신의 동생의 처를 데리고 사는 것에 분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임금에게 말합니다. 임금에는 요한이 눈의 가시일 수밖에 없고 목에 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던 임금은 아내와 딸의 꾐에 빠져 요한을 목을 베어 죽입니다. 그러나 이제 헤로데는 임금을 거침이 없이 여우라고 칭하는 "새로운 요한"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능력이 있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느님의 아들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를 엘리야,또는 옛예언자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감탄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느님의 인정, 즉 하늘의 영광을 찾아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인정을 받고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옛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님께 간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제 안에 여러분들 안에 항상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 힘을 얻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수 성심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 성심,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소서. 아멘." 우리는 과연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을 의식하지 않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람이 하늘과 땅과 이웃과 형제, 자매에게 떳떳하고 당당하면 저는 성인이라고 평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면 아마 이 말씀을 꼭 하실 것만 같습니다. "우리 모두 성인, 성녀처럼 살아갑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빌며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오. 아멘.



2020년 7월 7일 화요일 아침.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아침에.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윤승환

2020.07.07 12:20:15
*.120.169.245

사실 주님의 종이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비굴하고 경멸적인 이야기로 파악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왕, 사제, 예언자들을 칭할 때 쓰였고 모세나 여호수아, 그리고 선지자들이나 심지어 이스라엘 전체가 주님의 종이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 자체도 주님의 고난받는 종으로 표현되고 있으니 겸손과 아울러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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