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어제 퇴근하면서 수원역을 거쳐 왔습니다.
한 가난한 형제가 의자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측은지심이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의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한 잔 뽑아서 그 형제의 머리맡에 두고 그 옆에 돈 700원을 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호경을 바치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어서 조금 걷다가 늘 보는 할머니가 초라하게 앉아 있기에 다가가서 잔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전에도 고맙다고 사례하는 것을 저는 고개를 흔들며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몇 발자국 걷다가 그 자리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짧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오는데 노숙인인지 여행객인지 세 명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커피 석 잔을 자판기에서 뽑아서 각자의 머리맡에 두고 기도를 바치고 왔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한 소년이 허름한 옷을 입고 신발가게 앞에서 진열장에 놓여 있는 멋진 신발을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한 귀부인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다가가서 왜 그러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소년을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싶은 신발이 있는데 너무 비싸고 돈이 없어서 제가 보고만 있었어요...?"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소년이 가엽어진 귀부인은 곧 신발가게로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서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 쿠키라도 사먹으라며 용돈도 넉넉히 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소년이 놀라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하느님께 그 신발을 가지고 싶다고 하였는데 부인게서 혹 하느님의 부인이 아니세요...?"
일찌기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 이냐시오(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는 다음과 같은 묵상기도를 남겼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이 기도 중에 이 글의 부제와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주되 댓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일찌기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서에서 하느님이 번제물과 같은 제사를 바라지 않으시고 이웃에 베푸는 자선을 바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떨까요...? 저도 그렇게 큰 자선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단 돈 100원이 아까워서 벌벌 떠는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상황도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나 돈을 기부하고 있고 편지와 기도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글을 쓰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되 댓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아멘."
2020년 7월 3일 금요일 아침.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아침에.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한 직장에서
아침 시간에 짬을 내어서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일찌기 현자들은 자선(Charity)이 인간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통로와 같은 구실을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인간이 참여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저로서도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평화를 빕니다. 아멘. 좋은 하루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