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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찬미 예수님. 아멘. 반갑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우리가 코로나19와 친숙하여진 것도 어느덧 6개월이 되어갑니다.


그러면 우라는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형제애라는 말을 듣고 이웃사랑이라는 말에 친숙하여져 있다고 말하여 왔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자신있게 그것을 실천하고 살았을까를 생각하여 봅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크게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요...?


이슬람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불교에서도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제2차바티칸공의회에 이르러 획기적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바로 개신교에 대하여 개신교의 교도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과 교회의 교도권이란 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정통을 이어받은 로마가톨릭의 교회의 교황이, 그리고 그 협조자인 주교들이 내린 결정은 곧 교회의 가르침이며 그 교도권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자세한 것들을 알고 싶으시다면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시거나 신부님들이나 수도자들에게 여쭈어 보면 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교황이나 주교를 위하여 바치는 기도를 드리면서 은연 중에 교도권에 대하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신교회에서는 고백성사나 성체성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는 것보다는 상징적인 것이다는 말을 합니다. 이를 화채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중보기도나 목회자들과의 상담을 통하여 죄를 고백하거나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진정 그리스도와 사도들, 교부들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은 가톨릭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갈라진 형제(갈린 형제)들에 대한 불화와 반목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는 과감하게 개신교교회의 교도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살면 그런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반발을 나았습니다. 그 외에도 라틴어로 드리던 미사를 각 나라의 고유언어에 맞게 할 수 있게 하고 사제가 신자들을 보고 미사를 집전하게 하는 등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아마도 인터넷이나 서적을 참조하면 대략이라도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바로 말 그대로 Tolerance(똘레랑스)에 대한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는 다른 종교나 종파의 가르침에 대하여 너그럽고 포용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종교 용어인 것입니다.


이단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선 자신들의 주장만이 절대적이고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이는 그 주장이 아무리 잘된 것이라도 이단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리나 가르침이 다른 것을 떠나서 한 번 정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종교 다원주의, 종교 상대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성서의 말씀, 그리고 성전(가룩한 전승)은 우리들이 폐기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문제가 싹트는 것입니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랐던 그리스도와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경우를 보고자 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나는 오류에 빠지고 그릇된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작정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우리의 잘못으로 교회가 갈라졌고 그리고 아직도 불목하고 있다는 신부님들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남북이 분단이 되고 이산가족과 그 밖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최근의 남북 관계와 주변의 정세는 이러한 똘레랑스가 종교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회 문제에도 널리 적용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지금껏 가지는데 소홀하였던 나 같은 사람부터 반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0년 6월 17일 수요일 오전.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오전에

경기도 화성의 마도면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한 천주교신자 윤승환 사도 요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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