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교재를 편찬한지 올해로 8년이 되었다.
양성교재 편찬은 양성의 방황을 멈추게 해주었고,
형제회 양성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교재 편찬은 참으로 반가웠다.
그러면서 교재내용을 어떻게 하면 명확하고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는가가
양성봉사자들의 최고 관건이었고 또 그렇게 해오고 있다.
재속프란치스코회 한국 현존 75주년을 맞아 회원들의 회개와 형제회 쇄신을 위해 열린
전국 회장단 토론회를 지역별로 하면서 꼭 언급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양성교재에 얽매여 지식적으로만 양성을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교재의 내용만 전달하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양성봉사자는 없으리라고 본다.
지적이고 인격적이고 영성적인 일의 전부를 할 수 없기에
양성교재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지식이 도외시된 양성이란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다.
물론 사부님께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인용하여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고 권고에서 말씀하신다.
반면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이 신학교수가 되는 청을 하였을 때는
"회칙에 담겨있는대로 기도와 신심의 정신을 끄지 않는한,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마음에 듭니다."고 하였다.
현재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양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용기가 없는 사람이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알 수는 있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용기있는 사람은 아니다.
비록 우리가 성인처럼 살지 못해도 우리는 충분히 형제회와 프란치스칸 영성을 알 수 있고,
또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린 성인이 아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것은 "참"이 아니다. 이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비록 성인의 경지에 있지는 않지만
양성을 할 수는 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고 성령 자신께서 자신의 일을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곧 우리가 넘어지고 부서지는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거짓이 아니다.
양성의 주체는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지식만 가르친다는 양성에 대한 지적들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자의식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복음은 스스로 우리 안에 누룩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늘상 빚어지는 양성의 문제들 앞에 놓여있지만
양성봉사자들은 삶으로 실천하고자 뼈를 깍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통합적인 양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있음을 안다.
매일 회개거리를 찾아 자신을 양성하고 있음을 안다.
사람마다 그 방법과 효과는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양성의 방법을 달리 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교재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도 좋지만
오히려 피양성자들에게 그 과의 내용을 요약하고 발표하게 하면 어떨까?
또 농촌과 도시의 양성방법은 달라야 할 것이고
교재내용을 더욱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어떤 좋은 교재나 가르침보다도
피양성자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동반자적 양성은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열린 토론회를 마치면서
형제회 양성의 범위와 방법 등을 변화시켜 형제회 쇄신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3년간 유기서약반을 양성 봉사하면서 2년간 6개월은 제가하고 나머지 약6개월은 양성회원들이 요약 발표하게 하였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했지만 편하게 준비해 오게하고 발표후 제가 보충 설명하였는데 ,아주 좋았고 맡은 과의 내용를 충분히 공부하고 발표하기위해 준비했기에, 깊게 각인이 되어 본인것이 되었다는 호평이었습니다.
< '함께 어우러지는 동반자적 양성'!!! 감사드리며,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