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강론으로 '황금의 입'(金口)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안티오키아의
크리소스토모(344-407). 398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된 성인은 사회악을
맹렬히 지적했고, 황후의 사치와 탐욕까지도 비난했습니다. 결국 그는 적대자들
의 모략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유배 길을 떠나기에 앞서 성인이 한 마지막
강론은 감동적입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음입니까? 아닙니다. 내 생명은 하느님께 감추
어져 있습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아닙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내 소유물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겠습
니까? 아닙니다. 나의 보화는 하늘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저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엘리야처럼 될 것이고 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예레미야처럼 될 것입니다. 굴에
던져 넣으면 다니엘처럼 될 것이요 바다에 던지면 요나처럼 될 것입니다. 돌로 친다
면 스테파노처럼 될 것이고 목을 벤다면 세례자 요한처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매질한다면 사도 바오로처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의지하고 믿으니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은 높임을 받을
것이며, 나는 환난 중에 주시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의 두려움을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합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신앙인도 삶 속에서 이런 두려움을 체험해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즉, 삶이 두렵고 불안했을 때는 언제나 주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한
경우였습니다. 그때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너무나도 빈약했었습니다. (송현 신부님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발췌)
프란치스칸이라면 한 두 번쯤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는 돈이 없어도 건강이 안 좋아도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굳센 믿음이 있
었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는 그 순간만큼은 사부님이 체험하신 바와
별반 차이가 없지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잠시 동안이고, 사부님은 항구적인 것이 큰
차이점이겠지요.
걱정과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는
것인데, 주님을 3분 이상 떠난 적이 없었다는 소화 데레사 성녀만큼은 아니더라도 1시간
이상 주님과 떨어져 있으면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