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회심을 주소서!
노환순(세실리아)/진주형제회
바오로 사도여,
사도의 불같은 질문은 동시에 응답이었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님의 손때 묻은 겉옷과
날마다 수십번을 들어왔던 이름과
율법으로 겹겹이 둘러싼 자신의 정체성을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에 팽개쳐
하얗게 불태우고
황량한 들판에 빈 그릇으로 서기까지
사흘 밤낮이면 충분했습니다.
'이방인의 마음을 캐는 전령'으로
동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앞으로 앞으로 질주하실 제
높은 산맥을 휘감은 먹구름도 자리를 양보하고
반목과 분열의 폭풍우도 잠자리에 들며
님의 발자국이 지나간 우거진 원시림은
쭈-욱 뻗은 고속도로가 되었나이다.
바오로 사도여,
님의 화두(話頭)는 시공(時空)의 징검다리를 건너
마침내 저의 화두로 넘겨졌나이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목메어 청해도
"먼저 너 자신을 빼어내 들어내 보아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십 여 년
사도여, 회심도 주님의 선물인지요?
명쾌한 해답지를 들고
오늘 저희들에게 오십시오.
님의 그 거침없는 질문의 피켓을 들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지금 자신을 화형시키려 합니다.
오랜 침묵 앞에
차리라 도망자로 남기를 작정하지 않게
큰 발자국으로 성큼 성큼 다가오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만든 감옥으로부터
참 자유의 선언을
만방에 외치게 하소서.
* 이 시는 2009.6.27. 마산교구에서 시행한 '비오로의 해' 기념 글짓기 대회 우수상 수상작으로, 진주형제회 양성봉사자로 활동 중인 노 세실리아 자매가 성바오로딸 통신성서 바오로영성과정을 마친 감사와 기쁨을 노래한 감동적인 '신앙고백'입니다.